국민주(酒), 서민의 술로 불리는 소주는 대표적인 불황형 상품이다. 맥주나 위스키에 비해 값이 저렴하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소주는 청년실업과 구조조정 등의 여파로 경제 여건이 어려웠던 올 상반기 생산량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1~5월까지 총 16억병의 소주가 생산됐는데, 이는 국민 1인당 30병의 소주를 마신 것과 같은 수치다. 힘들 때 더 찾게 되는 술. 그중에서도 저렴한 소주가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의 고단한 한때를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소주는 고려시대인 13세기 중엽 몽골에 의해 처음 우리나라에 소개됐다.
당시 몽골은 유라시아(Eurasia) 전역에 걸쳐 거대한 영토를 형성한 대제국이었는데, 일본과의 전쟁을 위해 부마국이던 고려에 주둔 중이었다. 이때 지금의 중동지역을 침략하면서 배운 증류식 주조법(酒造法)을 통해 소주를 만들어 고려에 전파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몽골군의 병참기지였던 경상북도 안동 지역에서 무형문화재인 안동소주가 생산되고 있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하지만 요즘 우리가 즐기는 소주는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怒伶箚?하기 어렵다. 오늘날 시중에서 판매하는 소주는 과거 우리 조상들이 마시던 소주와는 많은 면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원재료에 있다. 요즘의 소주는 고구마와 사탕수수 등을 이용해 에틸알코올을 만들고, 여기에 물과 감미료 등을 섞어 희석한 것이다. 쉽게 말해 알코올에 물을 타 도수를 낮춘 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시는 소주다. 하지만 전통방식의 소주는 쌀을 주원료로 한다. 우선 쌀을 물에 불려 시루에 쪄 지에밥(고두밥)을 짓는다. 여기에 쌀이나 밀로 만든 누룩을 넣어 수주에 걸쳐 발효시키고, 열을 가해 증류해 얻는 것이 원래의 소주다.
이렇게 빚어진 소주는 고려시대 이후부터 천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 땅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쁜 일이 있을 때는 기쁨을 배가할 목적으로, 슬플 때는 위로를 위해 사람들은 소주를 찾았다. 때로는 조상이나 신을 모시는 의식에서 경건함을 더하고자, 때로는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사람들은 소주를 만들었다. 이렇듯 소주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역할과 기능으로 우리의 삶 속에 존재해왔다. 하지만 사람의 인생이 그러하듯 소주의 역사 역시 줄곧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역사 속에 기록된 금주령과 관련한 이야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는 흉작이 들어 기근이 발생하면 종종 술 마시는 것을 법으로 제한하는 금주령을 내렸다. 건국 초기에는 금주령이 수시로 내려졌는데, 실록에 따르면 태종은 백성뿐만 아니라 자신에게도 술을 올리지 못하게 했고, 세종 때는 술 마시는 것은 허용하되 과음하는 것을 금했다. 중종 때는 금주는 물론이고 소주를 만드는 재료 중 하나인 누룩의 거래도 금지시켰다. 영조는 금주령을 대표하는 조선의 왕 중 한 명이었는데, 술 마신 자를 처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이웃에게도 죄를 묻는 등 가장 엄격한 금주령을 시행한 왕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조선의 왕들이 술 마시는 것을 금지한 이유는 술의 원료가 바로 곡식이었기 때문이다. 농본주의(農本主義)를 표방한 조선에서는 산업의 근간이 농업에 있었고 거기서 얻어지는 농산물, 그중에서도 주식인 쌀은 백성의 삶과 국가 존립의 바탕이 되는 중요한 것이었다. 따라서 금주령은 이러한 중요 자원이 술 만드는 데 과도하게 낭비되는 것을 막고, 흉작이나 기근이 들 때 식량 사정이 악화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내려진 조치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에서 술 마시는 것을 금지시킨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술이 가진 비가치재적 속성이 금주령이 내려진 또 다른 원인 중 하나다. 비가치재(demerit goods)란 소비할 때 얻어지는 효용과 쾌락은 과대평가돼 있는 데 반해 소비로 인한 비효용과 고통은 과소평가돼 있는 재화나 서비스를 말한다.
술을 예로 들면, 적절한 음주는 삶의 여러 방면에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남용하면 악마적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술 마시는 사람의 건강을 해치고 중독에 빠뜨리는 것이 개인에게 나타나는 술의 악마적 모습이라면, 다툼과 범죄의 원인이 돼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는 것이 술이 공동체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즉, 술을 대하는 순간의 기쁨과 만족에 눈이 멀어 그로 인한 부작용을 간과해 나타나는 것이 술이 가진 비가치적 특성인 것이다.
따라서 비가치재인 珦?소비할 때는 과소평가된 비효용이 현실화하지 않도록 심오한 판단이 요구된다. 하지만 마실수록 이성을 마비시키고 판단을 흐리게 하는 술의 속성 탓에 술을 두고 절제하기란 애초 쉬운 일이 아니다. 술을 비롯한 비가치재의 소비를 국가가 나서 제한하거나 금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개인의 판단에 맡겨서는 비가치재 특성상 소비를 적절한 수준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술값에 세금이 붙는 것도 술 소비를 억제하기 위한 국가 차원 제재의 일종이며, 금주령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비가치재의 거래와 소비를 제약할 때 유념해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바로 그로 인한 또 다른 부작용 발생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영조실록을 보면 금주령 이후 구실아치(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던 사람)들이 술집마다 다니며 돈을 뜯어내는 비리를 저질렀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처럼 금주령과 같은 비가치재를 제재하는 수단은 부정부패를 야기하고 암시장 출현이나 조직범죄를 양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효용은 과대평가되고 비효용은 과소평가되는 비가치재의 진정한 무서움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술과 같은 비가치재를 소비함에 있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절실히 요구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원식 < KDI 전문연구원 kyonggi96@kdi.re.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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