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것은 비난 뿐인데…
마차 안에서 만난 이들
눈이 내리는 한겨울 새벽 4시 반, 프랑스 북부도시 루앙의 노르망디호텔 앞에서 사람들이 마차를 기다리고 있다.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적군에게 점령당하자 안전한 곳으로 가거나 새로운 일을 모색하려는 이들이다. 백작 부부, 상인 부부, 도의원 등 10명이 마차에 탔다. 말없이 묵주를 돌리는 두 명의 수녀보다 더 눈에 띄는 여자는 ‘뭉실뭉실 비곗살이 찌고 포동포동한 손가락들은 마디마다 잘록하게 맺혀 있어서 소시지를 묵주처럼 매달아 놓은 것’ 같은 키 작은 매춘부 불 드 쉬이프다. 비곗덩어리는 그녀의 별명.
부인들은 ‘정숙이라는 공통점’을 가졌다는 듯 은근슬쩍 매춘부를 힐난하며 소곤거리고, 남자들은 그녀의 풍성한 몸매를 흘깃거리며 막막한 앞날에 대해 얘기한다. 적당한 곳에 내려 식당을 찾으려던 일행의 바람과 달리 눈 때문에 마차는 더디게 가고 허허벌판에서 모두 허기에 지쳐간다.
오후 3시쯤 불 드 쉬이프가 꺼낸 바구니에 통닭, 파이, 과일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녀가 맛있게 음식을 먹자 근엄한 체, 정숙한 체하던 사람들이 그녀 주위로 몰려든다. 불 드 쉬이프는 아낌없이 음식을 나눠주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모파상의 <비곗덩어리>는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 소수의 희생이 다수를 살리는 일, 그 희생의 결과가 참담할 때 등 다양한 비유에 자주 등장한다. 130년이 지난 지금도 하나의 상징이 된 불 드 쉬이프는 그 여행에서 계속 인기를 유지할까?
희생을 강요한 뒤 무시하는 사람들
중간 기착지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출발하려고 여관 마당에 모였을 때 마차 주인이 말이 없다고 말한다. 전날 밤 음흉한 프러시아 대장 장교가 불렀을 때 불 드 쉬이프가 듣지 않자 생긴 일이다. 점령군 프러시아 장교를 욕하며 불 드 쉬이프 편을 들었던 일행의 마음은 출발 날짜가 자꾸 지연되자 점점 식어간다. ‘원래 매춘부면서 뭘 튕기냐’는 듯 멸시의 눈길을 보내고 ‘이 여자에게 그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니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한다.
자꾸만 시간은 가고 사람들의 눈길이 차가워지자 불 드 쉬이프는 하는 수 없이 프러시아 장교를 찾아가고, 그녀의 희생으로 마차가 출발하게 된다. 사람들은 고마워하기는커녕 더러운 짐승이라도 보는 듯 사나운 표정이다. 한참을 달려 식사 시간이 되자 모두들 싸온 음식을 꺼내 먹기 시작한다. 급 構?나오느라 음식을 준비하지 못한 불 드 쉬이프에게 아무도 음식을 나눠주지 않는다. 일행에게 동조했던 수녀들도 마찬가지다. 눈물을 흘리는 불 드 쉬이프에게 한 부인은 “창피해서 우는 거야”라고 말한다.
한 사람이 두 번의 희생을 치렀지만 도덕적인 척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녀를 ‘더러운 비곗덩어리’로 바라볼 뿐이다. 다른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행태가 더 심해진 지금, 사람들은 더 많은 <비곗덩어리>를 만들어 괴롭히고 있다.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
1850년생인 모파상은 30세에 <비곗덩어리>를 발표하여 문단의 격찬을 받았다. 이미 신경질환 증세로 고통받고 있던 모파상은 병마와 싸우며 무려 300여 편에 달하는 단편소설과 여섯 편의 장편소설, 수많은 희곡과 시를 발표했다. 1883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여자의 일생>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이 낳은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여러 병이 겹쳐 43세에 세상을 떠났는데 너무 많은 작품을 쓰느라 몸을 돌보지 않은 것도 원인이 되었다.
모파상은 안톤 체호프, 에드거 앨런 포와 함께 세계 3대 단편소설 작가로 꼽힌다. 단순한 문장에다 사상도 도덕도 없다는 혹평이 따르지만 오히려 담백한 표현기법과 사람의 감정을 절묘하게 조명한 재미있는 스토리가 세계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마음의 중심을 건드리는 모파상 소설의 선명한 인물들은 이 시대를 향해서도 강한 목소리를 낸다. 남들에게 화려하게 보이고자 <목걸이>를 빌려서 파티에 갔다가 잃어버리고 가짜인 줄 모른 채 변상을 위해 수년간 고생한 여자, 일평생 자신을 사랑한 <의자 고치는 여인>의 죽음에 코웃음을 치던 남자가 그녀가 많은 돈을 남겼다고 하자 순간 태도를 바꾸는 모습 등등 모파상의 소설은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의미있다.
다른 사람을 <비곗덩어리> 취급하진 않는지 <목걸이> 따위에 목숨 걸어 생을 낭비하는 건 아닌지, <의자 고치는 여자>를 무시한 남자처럼 가증스러운 건 아닌지 모파상의 소설을 읽으며 내 삶을 점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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