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지상군 페스티벌

입력 2016-09-30 17:35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고대 군대의 행진은 곧 전투용 포진을 의미했다. 그리스는 2.5m나 되는 긴 창과 방패를 든 밀집부대의 팔랑크스(Phalanx) 전술로 당대 최강이던 페르시아를 격파했다. 백병전 위주인 고대 전투에서 팔랑크스 밀집대형은 마치 탱크와도 같았다. 알렉산드로스의 동방 정복도 팔랑크스 전술 덕이었다.

팔랑크스는 평지에선 막강했지만 산지에선 대형을 유지할 수 없는 게 단점이었다. 로마는 기원전 4세기께 군대를 재편하면서 팔랑크스를 3열 대형의 방패진형으로 발전시켰다. 밀집을 유지하면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대형을 변형하는 전술로 3개 대륙을 제패했다.

총포 시대에는 밀집대형의 행군이 무용지물이 됐다. 상비군이 등장한 근대 이후 군대 퍼레이드는 왕의 과시 또는 대국민 전시 용도였다. 18세기 중반 프로이센 군대가 도입한 ‘슈테히쉬리트(Stechschritt)’가 대표적이다. ‘찌르는 걸음’이란 뜻의 슈테히쉬리트는 상체를 꼿꼿이 세우고 무릎을 편 채 다리를 높이 들어 걷는 방식이다. 나치 독일을 거쳐 소련 중국 북한 등 공산국가들로 확산됐다. 중국에선 이를 ‘정보(正步)’라고 부른다. 하지만 영어로는 ‘goose step(거위 ?’으로 비아냥대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조지 오웰은 거위 걸음이 의도적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군홧발로 짓밟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오늘날 서구에선 과시용 행사가 사라진 대신 군사문화를 축제와 결합시키는 추세다. 1950년 시작된 영국의 ‘에든버러 군악대(Military Tattoo) 페스티벌’은 약 50개국에서 참가하고 100만명 이상 관람하는 세계적 축제가 됐다. 한여름밤 에든버러성 앞에서 펼쳐지는 백파이프 공연이 압권이다.

군사 행사 하면 잘 훈련된 군대가 오와 열을 맞춰 일사불란하게 행진하는 모습부터 떠올린다. 우리나라도 1948년 건군 이래 해마다 10월1일 ‘국군의 날’이면 서울 도심에서 군사 퍼레이드가 열렸다. 그러다 1993년부턴 시가행진을 5년마다 열고 있다. 최근 열병식은 2013년 있었다.

국군의 날을 기념해 2~6일 충남 계룡대와 계룡시 일대에서 ‘제14회 지상군 페스티벌’이 열린다. 전시 공연 체험 등 44개 종목에 걸쳐 민과 군이 어울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돼 있다. 헬기 전차를 직접 타보는, 쉽지 않은 체험도 할 수 있다. 계룡대 주변에는 이성계가 조선 도읍으로 정하려 했던 신도안, 계룡산과 3대 사찰인 갑사 동학사 신원사 등 볼거리가 많다. 마침 백제문화제도 2일까지 이어진다. 연휴 나들이로 제격이지 싶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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