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첫 연휴 이색 풍경들…화환 줄고, 골프장 무더기 예약 취소

입력 2016-10-02 10:52   수정 2016-10-02 11:04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대한민국을 바꾸고 있다. 지난달 28일 시행에 들어간 이후 첫 연휴를 맞아 과거 우리 사회에서 보지못했던 상황이 곳곳에서 연출되고 있다.

국정감사장 국회의원들은 식사 뒤 밥값을 각자 지불했다. 시·도지사도 조찬 회동에서 예외 없이 더치페이('각자내기')를 했다. 기자들에게 더는 점심이 제공되지 않는다.

교육계 풍경도 달라졌다. 음료수를 비롯해 교사에게 건네려고 가지고 온 선물을 잠시 넣어뒀다가 다시 가져가라는 취지의 물품보관함이 학교에 설치됐다. 교사들은 수학여행이나 소풍, 체육대회 때 학부모로부터 간식을 받지 않는다.

일부 학부모는 아예 학부모회비를 걷지 말자고 목소리를 낸다. 담임교사에게 커피나 빵을 대접하는 것도 불법인 바에야 차라리 문제의 소지를 없애자는 취지다.

'김영란법' 시행 이전인 지난 27일 업체로부터 30만원의 조의금을 받은 한 공무원은 상을 치른 뒤 25만원을 돌려주기도 했다.

경조사비 상한액이 10만원으로 책정되면서 조의금이나 축의금을 5만∼7만원으로 줄이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전국 골프장에서는 예약 미달·취소가 속출하고 있고, '접대 문화'를 이끌었던 기업들은 바짝 몸을 웅크린 채 지갑을 닫았다.

진료일이나 수술날짜를 앞당겨달라고 병원에 부탁하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달 28일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몰고 온 폭풍과 같은 변화다.

과거 한국의 정(情) 문화에서 선물은 미풍양속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선물을 주고받으며 생활필수품을 조달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끈끈한 관계 유지 등을 위해 과도하게 주고받고, 접대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문화는 필연적으로 부정부패를 낳거나 준법 시스템의 정상적 작동을 가로막곤 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작년 기업체 59만1684곳이 접대비 명목으로 9조9685억원을 썼다.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등 유흥업소에서만 1조1천418억원을 사용했다.

한국 사회의 유별난 학연, 지연, 혈연 등 '연줄' 문화가 빚은 부정청탁 만연도 문제였다. 연줄 문화는 공정 경쟁을 저해하거나 업무 처리에서 헤아릴 수 조차 없는 '반칙'을 양산했다.

힘없는 사람들은 '빽'을 쓴 사람들과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없었다. 부정부패 없는 맑고 깨끗한 사회를 만들자는 합의 속에 태어난 것이 김영란법이다.

'더치페이 법'으로도 불리는 김영란법 시행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가 서양의 개인적 문화로 바뀔 가능성도 거론된다.

전문가들은 법 시행 과정에서 적지 않은 진통을 겪겠지만, 김영란법이 한국의 문화를 바꿀 것으로 확신한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농민이나 소상공인들이 뜻하지 않은 난관에 봉착했다. 축하 난과 꽃 선물 기피 현상이 벌어지고, '10만원 규제'에 조화 대신 조의금만 보내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화훼 농가나 꽃 가게가 된서리를 맞았다. 전업과 폐업 얘기까지 나온다.

충북연구원은 선물문화 위축에 따라 한우, 인삼, 과일(사과·배), 화훼, 임산물 등 도내 5개 부문의 생산 감소액이 11.5∼15.2%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식사시간 관가 주변 식당의 빈자리가 눈에 띄게 늘었고, 주류를 취급하는 유흥업소들은 이러다 가게 문을 닫게 생겼다며 아우성이다.

김영란법이 안착하는 과정에서 사정이 개선될 여지가 있겠지만, 서민들에게 가해지는 경제적 부작용은 정부·정치권이 서둘러 해결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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