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트럼프를 바라보는 유럽의 복잡한 속내

입력 2016-10-03 18:31   수정 2016-10-04 09:12

유럽인은 미국의 불행에서 '쾌감' 기대
역내 국수주의 성향 부추기는 건 경계

한철우 < 영국 더럼대 교수·경영학 >



지난달 26일 첫 번째 TV토론 이후 미국 대선 열기가 더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많은 사람은 힐러리 클린턴이 토론에서 우세했다고 평가하지만 그 이후 여론조사는 식지 않는 도널드 트럼프의 인기를 보여주고 있다.

두 후보 노선이 극명하게 갈리는 만큼 유럽에서도 미국 대선에 많은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있다. 대부분 유럽 지도자들은 클린턴을 지지하는 분위기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트럼프 승리가 세계 정치에 우파적 성향을 강화할 것을 염려했고,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 또한 트럼프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내무장관 시절 트럼프를 비판했다.

그러나 의외로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럽 지도자들도 꽤 있다. 대표적으로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 등은 트럼프를 지지한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수장인 장 마리 르펜은 자신이 미국인이라면 트럼프에게 투표하겠다고 말했고, 네덜란드의 자유당 리더 헤이르트 빌더르스 등 다른 극우 정당 수장들도 트럼프에 대한 지지를 보내고 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지난 7월 트럼프의 이민 및 외교 정책이 유럽에도 좋은 것이며 헝가리에는 필수적이라고 말하며 트럼프를 공공연히 지지해왔다. 최근에는 밀로시 제만 체코 대통령도 트럼프가 미국을 위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저명한 독일 저널리스트 매튜 카르니트슈니히(Matthew Karnitschnig)는 유럽 정치인들이 암암리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우선 트럼프는 유럽 내 미국계 회사의 영향을 강화할 것으로 인식되는 범대서양 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을 무효화할 것이라는 점, 트럼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높은 미국 의존도에 강한 불만을 표출해 온 만큼, 그의 승리는 ‘유럽연합군’의 창설을 촉진할 것이라는 점, 미국이 유럽에 큰형처럼 행세하는 것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점, 유럽 내 월스트리트 은행들에 대한 단속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미국이 도덕적 우월감을 갖고 유럽을 바라보는 시각을 사라지게 할 것이라는 점 등이다. 그는 “유럽이 내심 트럼프의 승리를 희망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결국 미국의 불행으로부터 얻게 될 쾌감”이라고 강조했다. 대부분 유럽 사람은 미국이 혼자 잘난 것처럼 행동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겨왔다. 그래서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이는 미국도 유럽과 다르지 않게 문제가 많고 선동 정치가의 거짓 약속에 쉽게 넘어간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승리가 유럽의 국수주의 성향을 더욱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유럽에서 국수주의 분위기는 꽤 오래전부터 감지돼 왔다. 멀리는 푸틴이 이끄는 러시아를 들 수 있으며 프랑스, 네덜란드 등 많은 유럽 국가에서 극우정당 지지율이 상승하고 있다. 모두가 기억하듯 지난 6월에는 극우정당의 지지에 힘입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가결됐으며, 헝가리는 최근 유럽연합(EU) 내 16만 이주민들을 재배치하는 계획에 반대해 찬반 총선을 하기로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수주의 성향의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이는 유럽 내 민족주의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EU의 이민정책에 불만을 가진 일부 국가의 반발 및 탈퇴, 나아가 EU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미 대선을 바라보는 유럽인들의 속내가 복잡한 이유다.

한철우 < 영국 더럼대 교수·경영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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