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아언각비] '언어의 자유시장'이 열렸다

입력 2016-10-06 18:12   수정 2016-10-06 19:59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요즘 ‘(병)따개’라고 쓰는 말을 예전엔 ‘오프너’나 일본말 ‘센누키’라고 했습니다. 애초 정부에서 순화 작업을 하면서 제시한 말은 ‘마개뽑이’였는데, 그리 호응받지 못했어요. 대신 누군가가 쓰기 시작한 따개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은 것이지요.” 2004년 남기심 당시 국립국어원장은 한글날을 맞아 한 인터뷰에서 우리말 순화의 어려움을 털어놨다. 순화작업이 성과도 컸지만 때론 언어 현실과 동떨어진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실패 사례는 많다. “놀이(희곡), 노래(시), 이야기(소설) 같은 것을 싸잡아 ‘문학’이라 부른다. 이들은 모두 ‘말의 예술’인데 ‘말로써 피워낸 꽃’이니 ‘말꽃’이라 할 만하다. 일본에서 만든 문학이란 말 대신 말꽃을 써보자.” 평생을 우리말 살리기에 이바지한 국어교육학자 김수업 선생(전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2009년 저서 《우리말은 서럽다》에서 ‘말꽃’이란 말의 탄생을 세상에 알렸다. 일부 호응도 있었지만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컸다. ‘100년 동안 써온 말을 생판 낯선 말로 바꿔도 되느냐’, ‘사라진 줄 알았던 국수주의 망령이 되살아났다’라는 게 비판의 요지였다.

우리말을 갈고 닦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국어순화 부문은 그동안 전문가들의 영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기계적이고 이상적으로 흐르는 한계가 있었다. 짜장면이 당당히 표준어 대접을 받은 것은 2011년이 돼서였다. 북한에선 한때 아이스크림 대신 얼음보숭이를 쓰도록 했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결국 1992년 <조선말대사전>을 펴내면서 얼음보숭이를 버리고 다시 아이스크림을 문화어로 올렸다.

570돌 한글날을 앞두고 국립국어원이 개방형 사전 ‘우리말샘’을 지난 5일 개통했다. 우리말샘은 위키피디아식으로 운영한다. 누구든지 회원으로 가입해 새로운 말을 올릴 수 있고, 뜻을 깁고 더할 수도 있다. 자유로운 경쟁과 정반합 과정을 거쳐 최적의 우리말을 찾아가는 게 목표다. ‘언어의 자유시장’이 마련된 셈이다. 송철의 국립국어원장은 “국민 참여의 장(場)을 통해 진정한 언어 민주주의 실현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개통 첫날 허성문 씨(이화여대 국문과 3년)가 ‘재능나눔’을 1호 제안으로 등록했다. 재능나눔은 재능기부와 함께 쓸 수 있는 말이다.

홍성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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