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마다 화려한 벽화…예술·젊음의 기운 물씬
'팝의 전설' 비틀스 초창기 함부르크서 공연
몽골식 스테이크 개량한 햄버거 '원조 도시'로 명성
독일 맥주와 궁합 뛰어나
2차 세계대전 때 지은 벙커…영화 제작공간으로 탈바꿈
독일의 창조적 사고 돋보여
독일 제2의 도시 함부르크. 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독일이 동서로 나눠졌던 시절, 함부르크는 서독의 물자 교류 중심지였다. 지금도 교역이 활발하며 항구도시답게 활기찬 기운이 감돈다. 벽마다 그려진 그래피티와 해골 그림, 여기저기서 맥주를 마시는 시민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도 명성이 높은 함부르크에선 다채로운 국제 행사가 열린다. 올해 첫 회를 맞은 영화제 함부르크국제웹페스트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함부르크의 매력은 방문객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교회 탑에서 함부르크를 한눈에
베를린 역을 출발한 지 약 2시간 뒤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유럽 여행을 올 때 늘 비행기만 타다 처음으로 기차를 탔더니 마음이 절로 설레었다.
함부르크에 도착한 다음 날 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인 세바스찬을 따라 시내를 둘러봤다. 그는 함부르크에 인상적인 관광 명소가 많고, 깨끗하면서 요금이 적당한 호텔이 많이 있어서 가족 여행객에게도 좋다고 자랑했다. 다른 도시와 달리 한국인은커녕 동양인도 쉽게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특이했다.
도시 전체를 보기 위해 성 미카엘 교회로 갔다. 바로크 양식 교회로 도시를 상징하는 건축물 중 하나다. 선원들의 안전한 항해와 신의 축복을 기원하고자 지었다고 한다. 도착시간이 낮 12시라 종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었다. 132m 높이의 교회 탑은 함부르크에서 두 번째로 높다. 낙뢰와 화재, 전쟁 등으로 여러 번 파괴됐다가 복원됐다. 탑에서 거대한 항구도시 함부르크를 내려다봤다. 항구에는 엄청난 양의 컨테이너가 쌓여 있고, 바다에는 거대한 선박, 크고 작은 여행용 크루즈와 보트들이 보였다. 도시 사이를 흐르는 수많은 물줄기는 바다와 합쳐져 장관을 이뤘다.
함부르크는 항구도시이기 때문에 이민자가 많다. 이민자를 포용하는 정책에도 불구하고 시민과 이민자들은 대립하기도 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영화가 1976년 제작된 ‘노스 시 이즈 데드 시(North Sea is Dead Sea)’이다. 함부르크의 도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14세 동양인 소년이 현실을 탈출하고자 무작정 보트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다. 항구도시 특성상 함부르크는 항해사와 홍등가 매춘부, 예술가들이 출 ?求?영화가 많이 제작되기도 한다. ‘007 제임스본드: 투모로우 네버다이’와 독일 출신 세계적인 감독 빔 밴더스의 ‘더 아메리칸 프렌드(The American Friend)’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햄버거의 유래가 이곳에서
대부분의 독일인은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의사소통에는 별문제가 없었다. 발음은 혼란스러웠다. 독일식 발음과 영어 발음이 달랐기 때문이다. 함부르크의 경우 독일과 한국은 ‘함부르크’로 발음하지만 영어식 발음은 ‘햄버그’다. 함부르크웹영화제 행사 때는 공식석상에서는 세계인들이 참석하기 때문인지 모두 영어식 발음으로 햄버그라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즐겨 먹는 햄버거는 함부르크에서 유래한 말이다. 몽골에서 전파된 타타르 스테이크가 독일에서 개량된 것이 햄버거다. 함부르크 사람들은 소고기를 갈아서 뭉치고 구워 먹었는데 이것이 ‘함부르크 스테이크’다. 1850년대 독일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이 음식이 알려졌고, 미국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에서 함부르크 스테이크는 햄버그 스테이크(hamburg steak)로 바뀌었는데 이것이 햄버거가 된 것이다.
여행에서 맛보는 현지식은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다. 독일 하면 맥주다. 함부르크에서 터키식 커피, 함부르크 햄버거, 전통 맥주를 맛볼 수 있었다. 독일에서는 맥줏집을 비어가든이라고 불렀다. 맥주뿐만 아니라 레스토랑을 같이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런 레스토랑들도 보통 비어가든이라고 부른다. 독일인은 맥주를 마시는 것이 물 마시는 것처럼 생활화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는 곳마다 큰 컵을 들고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비틀스의 자취가 묻어 있는 곳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국 밴드 비틀스가 함부르크에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다. 팝의 전설로 불리는 비틀스는 초창기인 1960~1962년 함부르크 리퍼반에 있는 클럽에서 일하며 세계 음악의 역사를 쓰는 초석을 놓았다.
리퍼반은 두 번 방문했다. 낮에는 평범한 쇼핑과 식당 거리일 뿐이다. 밤에는 거리 전체가 붉은 네온으로 휩싸여 있었고, 사람도 훨씬 더 많았다. 공연 극장, 클럽, 카바레, 고급 바도 많이 보인다.
리퍼반에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곳은 비틀스 광장. 유명해지기 전까지 비틀스는 함부르크 역에서 3.2㎞ 떨어진 세인트 파울리에 살며 클럽에서 여러 번 공연했다. 당시 이들이 공연하던 클럽 중 아직도 명맥을 이어오는 곳이 있다. 1960년에는 비틀스 기타리스트 조지 해리슨이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환락가였던 리퍼반에서 공연하는 데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리퍼반에는 홍등가도 있다. 홍등가라는 말만 듣고 상당히 지저분한 거리일 것으로 생각했으나 도착해 보니 깨끗하고 멋진 건물이 많았다. 밤에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의 야외 파티 장소로도 북적였다. 홍등가 안에는 교회도 있었다. 유흥업소 접대부나 매춘부들은 힘든 삶을 극복할 신앙이 필요했을 것이다. 홍등가가 있다고 해서 도시 전체를 폄하하면 안 되는 이유다.
독일인의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만나다
리퍼반을 지나 세바스찬을 따라 몇 분 걸어가니 아주 독특한 축구장이 보였다. 독일 프로축구 2부리그 FC 상파울리의 홈구장이다. FC 상파울리는 독일에서 가장 대표적인 좌파 구단으로 불린다. 도시를 안내하던 세바스찬은 구단이 컨테이너 항구 부두 노동자, 성 노동자, 무정부주의자, 양성애자, 도시에 사는 근로자 블루칼라 계층을 대변한다고 말했다.
축구장을 지나 좀 더 걸어가니 거대한 시멘트 건물이 앞을 가로막았다. 2차 세계대전 때 지은 벙커다. 지금은 영화인들이 녹음, 영화제작 등을 하는 사무실로 개조됐다. 베를린에도 벙커가 있다. 벙커는 지하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거대한 지상 건물도 남아 있었다. 베를린 벙커는 지하철과 바로 연결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핵전쟁 준비 대피시설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관광단지로 조성됐다. 이런 역사적인 건물을 탈바꿈시킨 독일인의 실용적이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배울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부르크는 운하의 도시이기도 하다. 옛도심에는 상업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운하가 흐른다. 그래서 운하에 걸친 다리가 많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과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다리가 이곳에 있다고 한다.
성 미카엘 첨탑에서 본 항구에 도착했다. VR(가상현실) 제작진과 만났다. 이들은 함부르크의 한 요트 기업을 홍보하는 VR 영상 테스트를 하는 중이었다. 관광객들을 태운 유람선 뱃머리에 VR 카메라를 장착하면 360도로 항구 전경을 영상 안에 담을 수 있다고 해서 흥미로웠다. 배를 타고 가는 嚥?항구를 볼 수 있었다. 중국으로 수출되는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선박으로 옮겨지는 장면, 최대급 유람선이 정박한 모습이 보였다. 마치 VR 카메라로 영상에 담으면서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강영만 영화감독 youngmankang@gmail.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모바일한경 구독신청] [한 경 스 탁 론 1 6 4 4 - 0 9 4 0]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