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대한민국 갑질 리포트] 중앙부처 관료들의 용역·산하 공기업 갑질

입력 2016-10-10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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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 회식이면 카드 들고 식당으로…아~ 퇴근 후에도 갑님은 존재한다

공공기관·용역 불러 결제시키기, 김영란법 시행 전엔 월례행사
"돈 받았으면 하라는 대로 할 것이지…" 용역 하나 맡겨 놓고 노예 취급도



[ 김재후 / 마지혜 기자 ] 공기업에서 대관 업무를 오래한 A씨는 정부 부처가 경기 과천에 몰려 있던 시절 저녁마다 과천 식당가로 출근하는 게 업무였다. A씨가 근무하는 공공기업을 관리감독하는 부처의 관료들이 회식을 하면 음식값을 결제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은 회식 자리가 두 곳이어서 한 곳은 참석하지 않고 결제만 하기도 했다. 나중엔 그런 일이 많아지자 아예 식당을 정해놓고 한 달에 한 번씩 결제만 하는 게 관행이 됐다고 한다. A씨는 “그래도 회식자리에 가면 관가 정보를 들을 수도 있고 나중에 부탁할 수 있는 관계를 틀 기회로 삼을 수 있었다”며 “그런데 식당에서 결제만 하자 내가 신용카드가 된 것 같은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산하기관은 부처의 영원한 을(乙)

중앙부처가 공공기관에 갑으로 군림할 수 있는 건 공공기관·공기업의 예산 인사 관리감독 권한을 갖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공기업은 부처엔 ‘영원한 을’일 수밖에 없다. 한 공기업 임원은 “부처 ‘사무관님’ ‘과장님’은 곧 우리 회사 사장님과 같은 존재”라며 “이들이 부르면 언제라도 바로 달려간다”고 했다.

민간 기업도 사정이 크게 다르진 않다. 관료들의 점심값·저녁값을 내주는 것은 물론 ‘골프’를 모실 때 ‘도어 투 도어(door to door)’ 서비스까지 했다. 한 민간기업 대관팀장은 “공무원들은 가명으로 골프를 치기 때문에 새벽에 차를 보내고 저녁에 모셔다 드린다”며 “이 경우 렌터카에 대리비까지 해서 비용이 엄청 늘어난다”고 털어놨다.

공기업이든 민간기업이든 공무원들의 무리한 요구를 거절하기는 힘들다. 관료들이 ‘규정대로만’ 일을 추진하면 얼마나 힘들게 될지 눈에 선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한 기업 관계자는 “조사기관이 조사한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자 해당 기관 담당 국장이 사무관에게 ‘감히 흘려? 더 세게 조져’라고 지시해 고생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돈 받았으니 내 업무도 해라”

정부가 발주하는 컨설팅과 홍보 등 용역을 수주하는 대행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B대행사에서 일하는 김모씨는 한 사회부처 사무관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은 날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수주한 용역을 마친 상태에서 홀가분하게 전화를 받은 김씨에게 사무관은 자신이 다른 자리에서 발표할 자료를 만들어줄 것을 요구했다. 김씨는 “그건 용역 계약서에 없는 내용”이라고 했지만, “돈 받으셨잖아요. 그럼 제가 말하는 거 다하셔야죠”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한다.

“갑질, 폭력이란 인식 있어야”

권력관계를 이용해 금전적인 혜택을 보는 갑질 행위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으로 당분간 어려워진 분위기다. 하지만 조사권을 최대한 발동한다든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계약 외 사항을 요구하는 갑질은 여전히 김영란법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산하기관이나 용역을 맡는 대행사의 업무 독립성을 강화하고, 3000만원 이하는 수의계약을 해 감시에서 벗어나는 용역도 모두 감시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재후/마지혜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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