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웹툰 등 원천 콘텐츠를 잡아라"…뜨거운 'EIP 전쟁'

입력 2016-10-10 18:46  

부산 아시안필름마켓에 47개국 바이어 1300여명 '북적'

알리바바·텐센트·완다 등 중국 콘텐츠업체 대거 참여

중국 바이어 "한국 콘텐츠 역동적…모두 구입하고 싶다"



[ 유재혁 기자 ] “한국의 역동적인 엔터테인먼트 지식재산권(EIP)을 사기 위해 왔습니다. 인상적인 콘텐츠가 많고, 피칭(설명)도 참 잘해요.”

지난 8일부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부대행사로 열리고 있는 아시안필름마켓에 참가한 하워드 선 알리바바픽처스 프로듀서는 10일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이번 필름마켓에는 알리바바픽처스뿐만 아니라 텐센트픽처스, 완다미디어, 화이브러더스, 허이필름(요우쿠투더우 자회사), 화처미디어 등 중국 주요 콘텐츠업체 관계자가 대거 참가해 주최 측을 놀라게 했다. 중국 업체들은 영화제 개막 직전까지 사드(THAAD·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 때문에 올 수 없다고 한 터였다. 11일까지 벡스코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에는 47개국, 1300여명의 바이어가 몰려 EIP에 대한 세계 콘텐츠 제작사들의 관심을 반영했다.

◆작가들 피칭 행사장 관심 ‘후끈’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영상普矛湯?만들 수 있도록 제작 투자를 요청하는 저작권자들의 피칭 행사였다. 피칭은 작가들이 편성, 투자 유치, 공동 제작, 선판매 등을 목적으로 제작사와 투자사, 바이어 앞에서 기획·개발 단계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설명하는 일종의 투자설명회다. 이번 마켓에서는 총 42편이 소개됐다. 부산영화제 측이 엄선한 《괴물 사냥꾼》(주니어김영사) 등 소설 10편, ‘더블 캐스팅’ 등 웹툰과 웹소설 10편, ‘불의 전쟁’ 등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한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 8편이 피칭 무대에 올랐다. 여기에 영화진흥위원회가 선정해 투자자를 찾는 14편의 시나리오도 가세했다.

국내외 바이어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소설 《조선변호사 왕실소송사건》의 정명섭 작가는 “중국의 화처, 화이브러더스 관계자 등과 만났다”며 “한국 사극을 중국에서 사려고 하는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마켓 관계자는 “중국 바이어 몇몇은 여기 나온 모든 콘텐츠를 한꺼번에 사겠다고 말하고 다닌다”고 전했다. 박연선 작가의 스릴러 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와 꿀단지그룹의 시나리오 ‘영혼 이별식’의 영화화 판권은 이번 마켓에서 한국 업체에 팔렸다. 주최 측은 EIP 확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어 앞으로 2~3개월간 추가 협상을 통해 많은 계약 사례가 쏟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해 필름마켓에선 웹툰, 웹소설 부문에서 10편을 선보여 5편이 팔렸다. 웹툰 ‘통’은 올 들어 카카오와 SK브로드밴드가 웹드라마로 제작해 500만뷰 이상을 기록했다. 소설 부문에서는 10편 중 2편, 스토리 부문에선 8편 중 2편이 판매됐다. 연초 중국을 휩쓴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수상작이고,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KBS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웹소설이 원작이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세계 최초의 EIP 마켓이 제대로 터졌다”며 “미디어 시장이 급변하면서 원천 콘텐츠의 중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IP 확보로 성공 사례 쏟아져

중국과 미국에서는 하나의 원천 EIP로 다양한 플랫폼에 맞는 콘텐츠를 개발해 대박을 거둔 성공 사례가 쏟아지고 있다. 중국 후난위성TV는 한국 예능프로그램 ‘아빠 어디가’ 판권을 구입해 중국 버전으로 시즌 4까지 제작해 히트했고, 극장용 영화도 세 편이나 제작해 크게 성공했다. ‘런닝맨’은 중국판 예능에 이어 모바일게임으로 제작돼 인기를 얻었다.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디즈니가 ‘어벤저스’ 등의 판권을 가진 만화 출판사 마블을 인수해 영화와 게임, 뮤지컬 등을 제작해 메이저 중 최고 실적을 기록 중이다. 할리우드 메이저들은 한국과 일본, 독일 등에서 EIP에 직접 투자하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플랫폼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다양한 국가에서 원천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서다. 중국에서 콘텐츠 합작사업을 벌이고 있는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체 관계자는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합작사업이 어려워지자 중국 업체들이 EIP 확보를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며 “EIP가 많으면 주가를 올리기에도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EIP를 팔 때 모든 미디어에 한꺼번에 팔지 말고 쪼개 팔아야 하고, 일정 기간 안에 영상화되지 않으면 권리를 회수하는 조항도 넣어야 한다”며 “수익에 따라 분배받는 러닝 개런티 계약이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부산=유재혁 대중문화 전문기자 yoo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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