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대표기업] "정유·화학, 지금은 알래스카의 여름"…고부가·해외사업 집중 투자

입력 2016-10-11 20:50  

저유가에 정제마진 높은 수준 유지
'정유 빅3' 상반기 영업익 4조 돌파
일부 업계선 선제적 사업재편 진행



[ 주용석 기자 ] 정유사들과 석유화학사들은 올해 저유가 덕을 톡톡히 봤다. 하지만 지금은 ‘알래스카의 여름(짧은 호황)’일 뿐이라는 경고도 적지 않다. 특히 석유화학 업종은 이미 중국발(發) 공급과잉의 사정권 안에 들었다. 정부는 페트병 원료인 테레프탈산(TPA) 등 일부 석유화학 품목에 대해 “당장 감산이 필요하다”며 구조조정을 독려하고 있다. 해당 업계는 사업 재편을 논의하고 있다.

정유사 실적을 좌우하는 최대 변수는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원유 도입 단가,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 기준)이다. 문제는 이 정제마진이 일정치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큰 폭으로 요동치고 있다는 점이다. 올 1월만 해도 정제마진은 배럴당 10달러 안팎에 달했다. 정제마진은 상반기 내내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덕분에 국내 정유사들은 올 상반기에 사상 최대 이익을 올렸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등 정유업계 ‘빅3’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 합계는 4조1791억원으로 전년 동기(3조1562占?보다 32.4% 늘었다. SK이노베이션은 반기 기준으로 사상 처음 2조원에 육박하는 이익을 올렸고 GS칼텍스와 에쓰오일도 나란히 ‘반기 영업이익 1조원 클럽’에 가입했다.

정제마진은 이후 하락세를 보이며 8월에는 일간 기준으로 배럴당 3달러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보통 정제마진이 배럴당 4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정유사가 이익을 내기 힘들다. 하지만 최근에는 반등세를 보이면서 배럴당 6달러대로 올라섰다. 정제마진 반등은 해외 정유사들의 정기 보수로 공장 가동률이 낮아진 영향이 컸다. 원유 가격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석유 제품 수요는 비교적 탄탄하게 유지되고 있는 점도 한 요인이다.

석유화학 제품도 상황이 비슷하다. 저유가로 석유화학 주원료인 나프타 가격은 비교적 낮은 수준을 유지하는 데 반해 제품 가격은 크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석탄을 원료로 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석탄화학사들은 올해 석탄 가격 급등으로 생산을 줄이거나 증설을 늦추고 있다. 덕분에 국내 석유화학사들은 쾌재를 부르고 있다. 예컨대 순수 석유화학사인 롯데케미칼은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1조1675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42.8% 늘었다. 하반기에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NH투자증권은 롯데케미칼의 올해 영업이익이 2조3580억원으로 작년(1조6111억원)보다 46.3%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저유가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게 변수다. 이 때문에 정유사와 석유화학사 모두 ‘미래 대비’에 나섰다. 핵심은 해외 사업을 늘리거나 고부가 제품 위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이 중국 국영 석유기업 시노펙과 손잡고 중국에 에틸렌 생산공장(중한석화)을 지은 게 단적인 예다. SK이노베이션은 사우디아라비아 사빅과 합작해 울산에 고급 폴리에틸렌을 만드는 넥슬렌 공장을 짓기도 했다.

한화케미칼은 업계 최초로 사우디에 석유화학 공장(인터내셔널 폴리머·IPC)을 건설했다. 사우디 민간 석유회사 시프켐과 합작을 통해서다. 이 공장은 작년 4월 상업생산 이후 5개 분기(작년 2분기~올해 2분기) 누적 기준으로 매출 3761억원, 영업이익 1142억원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이 30.4%에 달했다. 정보기술(IT) 업체 뺨치는 수준이다. 석유화학 업체의 영업이익률은 통상 5~10% 정도다. 사우디 석유회사와 손잡고, 사우디에 공장을 지으면서 ‘값싼 원료’를 확보한 게 고수익의 핵심 비결이다.

TPA 업계는 구조조정을 모색하고 있다. 국내 업체 중 TPA를 생산하는 곳은 한화종합화학, 삼남석유화학, 태광산업, 롯데케미칼, 효성 5개사다. 이들 5개사의 연간 생산능력은 580만t가량이다. 이 중 190만t가량 감축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해당 기업들은 각 사가 알아서 감산하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 각 사의 설비, 인력, 자산을 현물 출자해 합작법인을 세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합작법인이 설립되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는 데다 이 법인이 각 사 설비 가운데 효율성이 낮은 설비부터 가동을 줄일 수 있어 원가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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