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의 산업정책 읽기] 정치가 돌 던질 자격 있나

입력 2016-10-13 17:07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


“톱다운 조직문화에 너무 익숙하다. 아래로부터 창출되는 창의성과 혁신이 묻히기 일쑤다.”(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밖에서 보기에 실적이 좋아 보이지만 내부 모순이 쌓여가는 단계다.”(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 “그동안 부실이 누적돼오다 임계점에 이르러 폭발한 것이다.”(이혜훈 새누리당 의원)

정치권이 내놓은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사태에 관한 논평이다. 이들은 정치가 엉망이어도 기업만은 어떤 문제도 없어야 한다는 가정을 믿는 정치인들임이 틀림없다.

물론 기업 내부의 문제를 부인하기 어렵다. 1등 기업이 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자고 나면 추격자가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게 1등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엔 경쟁자가 없다는 자만감, 관료주의 함정 등에 대한 지적도 나올 수 있다. 1건의 큰 결함 뒤에는 고객이 제기한 29건의 클레임, 또 그 뒤엔 300건의 오류·징조가 있다는 ‘하인리히 법칙’을 떠올리게도 한다.

정치권의 ‘유체이탈’

삼성전자만의 문제도 아니다. 결함 의혹을 받고 있는 현대자동차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미래차 대응은 둘째치고 거대 노조가 저토록 발목을 잡는 데 언제까지 굴러갈지 아슬아슬하다. 한미약품도 그렇다. 연구개발은 앞섰지만 기업이 어느 단계에 이르면 가장 약한 부문에 발목이 잡힌다는 ‘리비히 법칙’을 일깨워주는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삼성전자, 현대차, 한미약품 등은 한국 경제를 이끄는 리딩기업이다. 한국 산업 전체가 위기일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모든 게 기업 탓이라고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비판자 입장에 선 정치권은 무관한가.

미안하지만 기업 문화는 정치적 환경과 따로일 수 없다. 삼성 문화가 어떻고 저떻고 하지만 밖은 지독한 수직적 위계질서에 관료주의적인데 오로지 기업만 개방·투명·유연으로 가라면 말이 되나. 현대차 노조를 무소불위로 만든 데는 정치도 일조했다. 기업의 ‘시간 지평(time horizon)’도 정치적 시계(視界)와 무관할 수 없다. 한미약품이 잘나갈 땐 너도나도 숟가락 놓기 바쁘더니 한순간 돌변하는 게 한국이다.

혁신의 적이 누군가

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론만 해도 그렇다. 툭 하면 기업에 손 내밀어 돈 뜯어가는 쪽이나, 해체하라는 쪽이나 기업단체를 한낱 정치적 종속물로 여기는 건 똑같다. 정치는 깨끗한데 경제단체 혼자 바람이 났다는 건가.

여야 대선주자들이 온갖 색깔의 경제론, 성장론 등을 들고나온다. 지금이 파시즘·나치즘 시대도 아니고, 공산주의·사회주의 치하도 아닌데 웬 수식어가 그리도 많은지. 정치적 미사여구가 넘칠수록 기업 동원과 경제 왜곡은 더 심해진다는 게 역사적 교훈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대한상공회의소 간담회에서 “온 세계 경제단체들과 연구기관들이 한국의 창조경제를 지극히 높이 평가하고 있다”고 했다. 그 며칠 뒤 프랑스 다쏘시스템이 한국에서 개최한 콘퍼런스의 주제는 부끄럽게도 ‘웨이크 업 코리아(Wake Up Korea)’였다.

기업을 탓하는 정치인들이 정작 기업 환경을 악화시키는 정치권의 후진적 문화, 모순, 부실 등에 대해선 왜 말이 없나. 기업이 혁신하지 않으면 망한다지만 그 혁신을 가로막는 적이 바로 정치란 걸 아시는지.

안현실 논설·전문위원·경영과학 박사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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