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리뱅크스 지음 / 이수경 옮김 / 북폴리오 / 376쪽 / 1만5000원
[ 김희경 기자 ] “레이크 디스트릭트 산에서 돌담을 쌓았다.”
영국 옥스퍼드대 입학 지원서에 한 학생이 이렇게 적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양치기였던 목장 집안의 장남 제임스 리뱅크스였다. 흔히 볼 수 없는 자기 소개였다. 영국 북서부의 한적한 시골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살고 있던 그는 도시의 전문직 종사자들을 보며 지금까지 살아왔던 곳과 다른 세계에 발을 들여 보기로 결심했다. 옥스퍼드대는 순수하면서도 열정적인 시골 청년을 흔쾌히 받아줬다. 하지만 졸업 후 리뱅크스는 다시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향했다.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양치기로서의 삶을 택했다.
《영국 양치기의 편지》는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기고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양치기 리뱅크스의 이야기다. 그는 사람들의 시야 밖에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세상을 품고 있는 자연의 진리를 고스란히 전한다.
리뱅크스가 옥스퍼드대 졸업 후 펼쳐질 탄탄대로를 마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간 것은 왜일까. 그는 “옥스퍼드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계절이 바뀌는 수많은 신호에서 등을 돌린 채 지냈다는 생각을 하니 속이 상했다”며 “결국 목장이 내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대인 다수가 잊고 있는 ‘우리 모두가 결국 흙과 연결돼 있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양치기에 집중한다. 새벽 일찍 일어나 양들을 챙기러 나간다. 경매에 나가 좋은 양을 사들이고 건초를 모아 겨울을 준비한다. 차가운 바람이 부는 겨울이 되면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는 양도 생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속상하지만 조용히 봄을 기다리며 겨울을 헤쳐 간다.
리뱅크스는 “이곳의 삶은 자연을 정복하는 태도 대신 겸손을 가르친다”며 “나 자신만 중요하다는 오만함을 잊게 된다”고 말했다. 봄이 찾아오고 암양들이 새끼를 낳으면 그가 원하는 대로 레이크 디스트릭트는 시끌벅적하게 활기를 되찾는다.
리뱅크스는 양들을 산으로 몰고 올라갈 때 가장 행복하다. “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가슴 깊이 들이마셔 본다. 어미 양들이 바위가 있는 곳을 올라가면서 뒤따라오는 새끼들을 향해 ‘매애애애’라고 말한다. 이것이 나의 삶이다. 더 바랄 게 없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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