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공간의 힘…소개팅 성공률이 달라진다

입력 2016-10-13 18:15  

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

콜린 엘러드 지음 / 문희경 옮김 / 더퀘스트 / 372쪽 / 1만7000원



[ 선한결 기자 ]
꼭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처음 만나는 날. 서울 광화문광장 옆 직선로와 서울 연남동의 골목길 중 어느 곳에서 만나는 것이 더 좋을까. 인지과학자들은 골목길을 추천한다. 작은 가게들이 모인 동네 길가에선 사람들이 쉽게 긴장을 풀고 수다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곡선 모양의 길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굽은 길모퉁이를 지날 때마다 나타나는 새로운 풍경이 대화에 활기를 주기도 한다. 반면 대형 빌딩이 양옆으로 즐비한 직선 길은 무의식적인 긴장 상태를 일으킨다. 이런 길을 지날 때 사람들은 평소보다 움츠러들고 수동적인 경향을 보인다.

콜린 엘러드 캐나다 워털루대 인지신경과 교수는 저서《공간이 사람을 움직인다》에서 “공간 환경이 사람의 생각과 감정, 신체 반응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며 “우리를 특정한 감정에 휩싸이게 하고, 의견과 결정을 바꿀 정도”라고 말한다.

엘러드 교수에 따르면 공간은 다양한 측면에서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일상의 움직임을 조율하는가 하면, 정신과 신체 컨디션을 바꾸기도 한다. 병실 창밖으로 자연을 볼 수 있는 환자가 벽돌담만 보이는 병실의 환자보다 빨리 낫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공간을 잘 활용하면 그 안에 있는 사람의 행동과 생각까지 바꿀 수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나 중국 마카오의 대형 카지노가 그렇다. 화려한 도박장 구석구석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도록 설계됐다. 카지노 입구 복도는 대부분 곡선으로 만들어 안쪽이 보이지 않게 돼 있다. 모퉁이를 돌면 갑자기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번쩍거리는 불빛과 소리에 사람의 심박수가 급격히 올라간다. 뇌를 일확천금의 기대와 흥분에 빠뜨리는 장치다.

요즘은 공간 설계를 통해 긍정적인 정서를 자극하는 것이 유행이다. 이미 많은 자극에 노출된 사람들이 더 자주, 더 오래 머물게 하려면 ‘쾌락과 힐링’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카지노와 대형 쇼핑몰이 ‘놀이터’를 테마로 들고 나왔다. 꽃과 나무로 가득한 정원식 인테리어를 도입하거나, 프랑스의 광장과 이탈리아의 베니스 운하 등 세계 유명 랜드마크를 본떠 공간을 만드는 식이다. 이런 설계는 상업시설을 넘어 도시 설계에도 적용돼야 한다. 좋지 않은 도시설계는 권태를 급속히 확산시키고, 권태감이 계속되면 불안감과 공격성을 느끼기도 쉬워지기 때문이다.

감각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한두 가지 메시지가 담긴 장소에 머물고 싶어하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기질이다. 불투명한 유리창 빌딩만 늘어선 직선대로 산책이 그리 즐겁지 않은 이유다. 저자는 “200여 걸음을 걷는 동안 특별히 달라지지 않는 풍경을 쳐다보는 것을 마치 ‘그’ ‘어…’ ‘그리고’만 계속 반복되는 음성 메시지를 듣고 있는 것과 같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좋은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평범한 보행자가 시속 약 5㎞로 이동하면서 5초에 한 번꼴로 흥미로운 장소를 볼 수 있는 도시”다. 그렇게 설계된 도시는 공간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선호를 충족하고, 편안함과 즐거움을 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물론 이미 들어선 빌딩을 모두 허물고 재건축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건물 하단의 3m 정도 외관을 바꾸기만 해도 도시를 이용하는 방식이 극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급격히 발전 중인 가상현실 기술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사방이 꽉 막힌 지하실에서 자연을 모사해 사람에게 치유 효과를 주거나, 가상공간을 구현해 원하는 주거공간 설계를 미리 체험해보고 건축에 들어가는 식이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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