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스파고 '유령계좌 쇼크' 뒤엔 '성과주의 독' 있었다

입력 2016-10-14 18:59  

"금융상품 하루 4건씩 팔아라"…직원들에 무리한 목표 강요

CEO는 불법행위 들통나자 연루 직원들에게 책임 전가

분노한 대주주 워런 버핏, 이사회 소집해 CEO 사임 압박



[ 이상은 기자 ] 웰스파고의 ‘얼굴’이던 존 스텀프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2일 물러났다. 고객의 허락 없이 은행 계좌와 신용카드 등 200만개의 유령계좌를 개설한 비리를 저질러 은행은 1억8500만달러(약 2100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금융위기에서 살아남아 경쟁사 와코비아를 인수하고 한때 시가총액 1위까지 오른 미국 3위 은행 웰스파고가 안에서는 이렇게 썩어가게 된 배경에 대해 외신들이 다양한 분석을 쏟아내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 무리한 실적주의가 꼽힌다. 2000년대 들어 웰스파고는 직원에게 공격적인 실적목표를 제시해 부담을 줬다. 웰스파고에서 근무했던 샤리프 켈로그는 뉴욕타임스에 “하루에 3~4건의 솔루션(금융상품) 판매실적을 내라고 해 미쳤다고 생각했다”며 “사람들의 금융생활이 그런 식으로 돌아갈 순 없다”고 비판했다.

웰스파고는 내부 고발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스텀프가 대표 자리에 오른 2005년 줄리 티시코프라는 말단 행정직원이 ‘은행 내에 고객 서명을 도용해 가짜로 계좌와 신용카드를 만드는 문화가 만연해 있다’며 인사팀에 제보했으나 무시당했다. 내부 윤리관련 부서나 ‘핫라인’도 눈을 감았다. 2011년에는 두 명의 다른 직원이 수년 전 CEO로 승진한 스텀프에게 직접 편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 2008년 이후 이 은행 직원들의 소송 자료에는 가짜 계좌 얘기가 적잖이 나온다.

은행 측은 오히려 직원을 희생양으로 내몰았다. 2011년부터 약 5년 새 5300명의 직원을 비위행위를 이유로 해고했다. 억울해하는 직원이 속출했다. 2013년 로스앤젤레스(LA)타임스가 이 문제를 기사로 썼고, 2015년 LA시가 직원에게 사기를 강요한 혐의로 은행을 제소했다. 연방감독당국 조사 결과 지난달 8일 대규모 벌금을 받으면서 곪아터진 부분이 밖으로 완전히 드러났다.

그럼에도 경영진은 이리저리 발뺌했다. 웰스파고는 이달 9일 주요 신문에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전면 사과문을 게재했다. 사람들의 눈길을 끈 것은 사과문보다 거기에 스텀프 등 경영진의 서명이 없었다는 점이다. 스텀프는 지난달 20일 의회 청문회에 출석했지만 중요한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또 월스트리트저널(WSJ), CNBC와 각각 인터뷰하며 자기 책임이 아니라 직원들 잘못이라고 슬쩍 미뤘다.

이 인터뷰가 웰스파고 지분 10%를 보유한 워런 버핏 벅셔해서웨이 회장의 심기를 거슬렀다. 웰스파고 이사회는 지난 10일 스텀프의 권한을 축소하고 임원진을 재편하는 결정을 내렸다. 사실상 ‘종신직’이던 스텀프가 사임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스텀프가 물러난 자리는 티머시 슬론 최고운영책임자(COO)가 승진해 맡게 됐다. WSJ는 슬론이 열린 태도로 호평받는 인물이지만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스텀프에 대한 4100만달러 규모 언베스티드스톡(스톡옵션의 일종)은 지급하지 않기로 했으나 이 문제의 직접적 책임자인 캐리 톨스테트 전 소매금융 부문장은 1억2000만달러의 보상금을 받고 나갔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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