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가들 포트폴리오 손질중
[ 송형석 기자 ] 최근 재테크 시장은 정중동(靜中動)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겉보기에는 바뀐 게 없다. 코스피지수는 2000~2050 박스권에 갇혀 있다. 연초에 비해서는 주가 수준이 올랐지만 ‘랠리’ 등의 수식어구를 붙이기엔 미안한 수준이다. 채권 가격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조용한 시장 분위기에도 자산가들은 조심스럽게 포트폴리오를 손질하고 있다. 오는 12월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것을 기점으로 시장 분위기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특히 국채와 선진국 채권과 연계한 금융상품을 잔뜩 가지고 있다가는 골탕을 먹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자산배분 공식이 바뀐다
수년간 세계 경제를 짓눌렀던 디플레이션(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 완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디플레이션 진원지인 중국의 생산자물가는 4년8개월 만에 상승세로 전환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지난 9월 생산자물가지수(PPI)가 전년 동월 대비 0.1% 올랐다고 최근 발표했다. 생산자물가지수가 상승세로 전환한 것은 2012년 1월 이후 처음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0.3%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디플레이션 현상 완화는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에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연말까지 주요 자산군의 가격이 얼마나 오를 수 있는지를 주요 증권사 자산배분 담당부서에 문의했다. 증권사들의 견해는 엇비슷했다. 별 다섯 개가 만점인 별점 평가에서 신흥국 주식은 별 4.1개를 받아 가장 유망한 자산으로 꼽혔다. 반면 채권 연계 자산들은 일제히 박한 평가를 받았다. 국채가 별 2.4개로 최하점을 받았고, 선진국 국채가 2.5개로 뒤를 이었다. 달러 강세의 역풍을 맞고 있는 금과 은(銀) 등의 귀금속에 대해서도 투자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귀금속은 별 2.8개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주식을 비롯한 신흥국 주식이 연말까지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측면에서 선진국 주식보다 나은 신흥국 주식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신흥국 주식이 더 오를 동력으로 평가했다.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서 신흥국 주식의 몸값 부담이 한층 줄었다는 설명이다.
신흥국 경제의 바로미터인 중국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신흥국 주식 시장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수현 NH투자증권 WM리서치부 책임연구원은 “중국의 산업생산, 고정자산투자 등 주요 실물지표의 개선세가 뚜렷하다”며 “다른 신흥국들에 비해 상승세가 미미했던 중국 주식의 몸값이 움직일 때가 왔다”고 말했다.
그레이트 로테이션 가능성도
채권에 대해선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상황에서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이 금리 인하를 고집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특히 유럽이나 일본처럼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한 지역은 금리를 끌어내릴 여력 자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채권 연계 자산의 수익률은 기준 금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금리가 내려가는 국면엔 기존 채권 보유자들이 금리 인하폭만큼 수익을 얻는다. 하지만 반대 상황에선 금리 인상폭만큼 손실을 보게 돼 있다.
일각에서는 채권에 몰려 있던 자금이 주식으로 이동한다는 가설인 ‘그레이트 로테이션’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경수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채권에서 빠져나온 자금이 갈 곳이 없다”며 “풍선 효과로 채권에서 주식으로 넘어가는 자산이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유 등 원자재에 대해선 중립적인 태도(별 3.2개)를 보인 곳이 많았다. 국제 유가는 오는 11월30일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의에서 생산량 동결 합의가 이뤄질지에 따라 가격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 다만 OPEC이 생산량을 늘리지 않기로 의견을 모은다 하더라도 유가 상승폭은 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 셰일 기업들이 생산량을 늘리면서 유가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을 것이란 논리다. 산업용 금속과 농산물은 공급과잉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가 많았다.
부동산 연계 자산인 리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목소리(별 2.8개)가 많았다. 리츠는 금리와 역의 상관관계를 갖는 자산으로 금리가 상승 쪽으로 전환하는 국면엔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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