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준화는 먼 과거의 패러다임
소수 영재 생각하는 정책 필요해
김정래 < 부산대 교수·교육학 >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하위 20% 계층의 소득 대비 상위 20% 계층 소득의 비율이 작년 4.19에서 4.51로 벌어져 불평등이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계층 간 고른 소득 분포는 사회정의를 가름하는 핵심 준거다. 그러나 이 수치를 근거로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며 일부 정치인이 주장하는 청년수당을 일괄적으로 지급한다거나 중상위 계층에 ‘징벌’로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해 보이지 않는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불평등 해소 방책이 적정하지 않으며, 다른 하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 심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청년수당 일괄 지급 방안은 평등의 의미를 심하게 왜곡한다. 평등은 양적 동일성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의 필요나 선호도를 고려할 필요가 있으며, 어느 경우에는 개인의 노력 여하를 나타내는 공과(功過)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납세는 징벌이 아니라 의무다. 징벌과 의무의 이행은 강제성이 있어서 외형적으로 동일해 보이기는 하지만 藉?납세자가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죄를 지어서가 아니다. 소득이 많은 만큼 국민으로서 사회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자신의 신성한 재산을 납부하는 것이다.
사회 불평등이 심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따져봐야 한다. 어느 나라나 예외 없이 지식기반사회에서 정보화가 진행될수록 정보가 편재(偏在)되고 집중화가 심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산업구조나 조직도 피라미드 모양이거나 단선형이 아니며, 그 집중화도 멱함수 곡선을 그리면서 불연속적, 불확정적, 예측 불가능한 양상을 드러낸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남다른 정보와 지식을 소유한 소수에게 부가 편중되게 마련이다. 신흥갑부들이 모두 지식산업과 관련됐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오래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천재 1명이 20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했다. 그러면 우리는 분배정책과 교육정책을 ‘천재 1명’에 맞춰야 하는가, 아니면 ‘20만명’에게 맞춰야 하는가. 청년수당 지급이나 중상위층에 중과세하자는 주장은 모든 정책을 후자에 맞추자는 것이다. 반면 전자에게는 징벌 차원에서 가능한 제재를 하자는 것이다.
실상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재능 있는 소수 학생보다는 ‘공교육’의 미명 아래 평준화 정책만이 강조된다. 그렇다고 공교육을 포기하거나 이른바 ‘부자 감세’ 주장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초점은 ‘천재 1명’과 ‘20만명’ 어느 쪽도 포기하지 말고 함께 배려하는 정책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수의 영재는 다수의 사람을 먹여 살릴 지식을 제공할 것이고, 다수는 소수가 활동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 여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과거 전통사회 패러다임에서 교사·학생 간 1 대 1 교육방식은 산업사회 패러다임에서 일(一) 대 다(多) 방식으로 바뀌었으며, 지식사회 패러다임에서는 P2P(peer to peer) 방식이 적용되는 다 대 다 방식으로 바뀌어간다. 이 새로운 틀에서 소수의 영재는 과거 패러다임처럼 더 이상 다수를 이끌어가거나 다수와 대립각에 선 존재가 아니다. 사정이 이럴진대, 과거 패러다임에서 짜진 누진세나 청년수당 지급 등과 같은 인기영합정책으로 불평등 해소는 불가능하다.
이 틀에서 과감히 벗어나 ‘천재 1명’에 초점을 맞추는 정책이 ‘20만명’에 결과적으로 득이 된다는 아이러니를 수용해야 한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이러한 특징을 ‘우회전략(obliquity)’이라고 한다. 급속한 속도로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해결책을 과거 패러다임에서 찾으면 안 된다.
김정래 < 부산대 교수·교육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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