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진 예우한 시진핑 "우리는 형제"
두테르테는 남중국해 언급 안해
미국과 '65년 동맹' 끊고 고속철 건설 등 경제실리 챙겨
[ 베이징=김동윤 기자 ] 중국을 국빈 방문 중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20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했다. 시 주석은 예상대로 필리핀에 고속철 등 필리핀 인프라 건설 투자, 필리핀산 수입 농산물 금지조치 해제 등 적잖은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중국과 필리핀은 2013년 이후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놓고 대립각을 세워왔다. 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해온 미국에 필리핀은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과 필리핀이 ‘밀월관계’에 접어들어 남중국해를 둘러싼 외교·안보 지형이 통째로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필리핀에 선물 보따리 안긴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이번 정상회담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중국 현지 언론은 전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이 “겨울이 가까워지는 시기에 베이징에 왔지만 우리 관계는 봄날”이라고 말하자, 시 주석은 “양국은 바다를 사이에 둔 이웃국가로 양국 국민은 형제”라고 화답했다.
두 사람은 정상회담 후 필리핀 고속철사업을 비롯한 기초시설(인프라), 에너지, 투자, 금융, 농업 등 13건의 협정문에 서명했다. 이날 정상회담 후 열린 비즈니스 포럼에서 라몬 로페즈 필리핀 무역장관은 두테르테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양국이 135억달러(약 15조2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을 무력화한 네덜란드 상설 중재재판소의 판결을 중국 정부가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에는 별도로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회담 전인 지난 19일 중국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상설 중재재판소의 판결은 종잇조각일 뿐”이라며 “정상회담 뒷좌석에 제쳐둘 것”이라고 말했다.
동남아지역 핵심 동맹국인 필리핀이 탈미친중(脫美親中) 노선으로 돌아섬에 따라 미국은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19일 주중 필리핀 동포와 만난 자리에서 “미국에 결별을 고해야 할 때”라며 “미국의 간섭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65년간 유지돼온 미국과 필리핀 간 동맹관계가 지금보다 위기인 적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2009년 버락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추진해왔다. 2014년에는 필리핀과 방위협력 확대 협정을 맺으면서 24년 만에 미군을 필리핀에 재주둔시켰다. 중국은 경제적 영향력을 지렛대 삼아 필리핀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를 미국에서 떼어놓기 위해 노력했다.
◆“친중(親中) 행보는 실용주의 산물”
두테르테 대통령이 탈미친중 행보를 보이는 것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포린폴리시는 “두테르테는 대학 시절 필리핀 공산당을 창건한 호세 마리아 시손을 존경한다고 공공연히 말했다”며 “이런 좌파 성향 때문에 기본적으로 미국보다는 중국을 더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필리핀 재계가 최대 교역 대상국인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다는 점 역시 두테르테 대통령이 친중 행보를 펼치는 이유 중 하나라는 관측도 나온다.
필리핀의 전문가들은 두테르테 대통령이 철저하게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라 보고 있다.
클라리타 카를로스 필리핀대 정치학과 교수는 최근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성과지향적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남중국해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영유권’이라는 명분에 집착하는 것보다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는 것이 실익이 있다는 계산을 한다는 얘기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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