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누구를 위한 졸업전시회인가요?"
10월 대학 캠퍼스는 졸업전시회로 분주합니다. 졸업반 대학생은 졸업작품 준비로 진땀을 뺍니다.
열정만으론 부족합니다. 돈이 필요합니다. 작품 만들고, 전시회 여는데 학생에겐 감당키 힘든 돈이 드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졸업 필수 관문이라 피할 수도 없습니다. 돈을 더 쓰면 때깔이 좋아지는 건 인지상정. 졸업하려면 더 돈을 써야 하는 구조입니다.
여덟 번째 #청년표류기 는 대학생 제보입니다. 오랜 졸업작품 관행에 학생들은 분노합니다. 아르바이트 번 돈 졸업전시회에 쏟아부어봤자 취업이 잘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다할 학과 지원도 없습니다. 졸업생도, 졸업을 앞둔 학생도 누굴 위한 졸업전시회인지 되묻고 있습니다.
27살 이종윤(가명) 씨는 올해 2월 패션학과를 졸업했습니다. 졸업전시회로 패션쇼를 열었습니다. 패션쇼에 종윤 씨가 들인 돈은 약 250만원입니다.
“4학년이 되면 졸업전시위원회를 구성하고 전시회비를 거둬요. 1인당 약 80만원 정도. 한 과에 60명 정도 되니깐 거의 5000만원. 이 돈으로 패션쇼장 빌리고 모델 섭외해요. 패션쇼 책(루크 북)이나 홍보물도 만들고요. 의상 제작에 필요한 부자재도 공동으로 구매하죠.”
▽ 170만원으로 만든 건가요?
“그렇죠. 개인 작품은 개인 돈으로 만들죠. 남성 정장 만든다고 400만원 쓴 선배도 있어요. 저는 졸업작품으로 재킷, 셔츠, 바지 해서 4벌 정도 만들었어요. 1벌에 평균 30만원씩, 그나마 적게 든 편이죠. 도면부터 봉제까지 직접 하고 원단이나 부자재는 최대한 발품 팔아 싸게 구했어요. 요즘 디자인만 하고 도면부터 봉제까지 졸업작품 전문 업체에 맡기는 친구들도 많아요.”
▽ 직접 만드는게 아니라요?
“패션 배운다고 모두 패션 디자이너를 지망하지 않거든요. 패션 디자이너는 취직도 잘 안되고, 박봉이라 힘들어요. 대신 패션 마케팅이나 영업 쪽으로 많이 가죠. 이미 패션시장이 포화 상태라 자기 브랜드도 힘들고요. 그러니 그냥 졸업장을 따려고 만들어요. 취업 준비로 바쁜데 구태여 시간 들이기 싫은 거죠.”
▽ 학교 측은 알고 있나요?
“알겠죠. 근데 교수들도 작품에만 관심 있어요. 퀄리티만 나오면 얼마를 썼든, 누가 만들었든 중요치 않아 해요. 2학기에 인턴이나 취업 된 친구들은 시간이 없어 그냥 업체에 맡겨요. 교수 평가 수정사항도 업체가 애프터서비스해줘요. 동기도 업체 통해 200만원 들여 졸업했죠.”
▽ 학생 불만은 없나요?
“당연히 많죠. 누구를 위한 패션쇼냐고. 비싼 돈 들여 패션쇼를 열어도 어차피 지인들만 오는데. 돈만 아까운 게 아니죠. 시간도 아깝죠. 3학년 겨울방학부터 준비하고, 6월부터 한창 옷 만드는데 다른 취업 준비는 할 수가 없어요.”
▽ 돈은 어떻게 마련하셨죠?
“다 빚이죠. 3학년 방학 때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150만원으로 버티다 결국 빚냈어요. 학자금 대출도 있는데 한국장학재단에 생활비 대출로 100만원 또 빌렸죠. 옷이 좋아 대학교 갔는데 아르바이트하기 바빠요. 졸업작품을 내세워서 취직하려해도 갈 데가 없네요. 졸업 패션쇼가 남긴 건 빚이 전부 같아요.”
영화감독을 꿈꾸는 영화과 학생 28살 이우상(가명) 씨는 올해 12월 졸업전시회를 엽니다. 졸업작품으 ?출품할 20분짜리 단편영화 후반작업에 한창입니다.
“영화과는 졸업작품으로 단편영화를 많이 만들어요. 영화라는 게 단편이라 해도 돈이 많이 들죠. 저는 500만원가량 들었어요. 작년 말부터 시나리오 작업해서 5월부터 본격적인 촬영을 위해 장소 섭외, 세트 설립, 미술 소품, 장비 대여했죠.”
▽ 500만원이나요?
“촬영 인건비가 많이 들어요. 촬영감독, 음향감독은 현업 종사자를 섭외하거든요. 저는 촬영감독 60만원, 음향감독 40만원에 섭외했죠. 상업영화하는 분들인데 그나마 아는 분들이라 싸게 했죠. 장비 대여료는 100만원 선입니다.”
▽ 외부 인력을 꼭 써야하나요?
“완성도를 위해 주요 스태프는 돈을 주고라도 전문가를 쓰죠. 장비도 부족하니깐 스튜디오도 가야하고요. 나머지 스태프들은 학교 후배나 지인들 밥 사주며 채워요. 식비만 100만원 가까이 나가죠."
▽ 500만원 부담스럽지 않나요?
“당연히 부담스럽죠. 한국 방송예술진흥원이나 대기업에서 창작지원금을 주는 프로그램이 있어도, 극소수만 혜택을 누려요. 그마저도 줄어드는 추세고요. 결국 알바 뛰고, 아껴둔 시나리오 팔고, 돈 벌러 다른 촬영장 다니는 거죠. 집안 형편 상 제작비를 혼자 벌었어 ? 7월까지 촬영 끝내놓고 스태프 일당 주려고 8, 9월 공사장에 살다시피 했어요."
▽ 학교 도움은 없나요?
“과마다 예산이 나오지만 원체 적어요. 돈 많기로 유명한 학교인데 학생 지원은 부족하다 느껴요. 예술대는 일반학과에 비해 등록금도 두 배 가까이 내잖아요. 한 학기 등록금만 500만원이에요. 그나마 예산도 과마다 특수성은 고려 안 하고 인원 수대로 나와요. 학교는 취업률 높은 과 위주로 대우해주잖아요. 영화 쪽은 대부분이 프리랜서라 4대 보험이 없어 취업 집계가 안돼요. 영화가 1~2년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 취업 같은 성과가 있나요?
“옛날이면 모를까, 요즘 대학 졸업작품전시회에 프로덕션들 잘 안와요. 가족, 선후배, 교수들만 있죠. 우리만의 축제. 외부에서 전시회보고 스카웃제의 했다는 얘기는 최근 몇년간 들은 적이 없어요. 지인 통해 들어간 경우면 모를까. 솔직히 왜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 가장 큰 문제점을 꼽는다면?
“예술가로서 자질을 키워주지 못한다고 해야 되나. 학교 지원도 그렇고, 개인이 돈을 다 부담해야 하는 구조도 그렇고. 출품 시기도 문제예요. 겨울에 졸업하려면 여름에 촬영을 어떻게든 마쳐야하는 거죠. 매년 매미 울고 푸르른 녹음이 무성한 졸업작품이 쏟아지는 이유에요. 겨울 배경 시나리오가 나올 수 없어요.”
24살 김성은(가명) 씨는 올해 2월 인테리어과를 졸업한 뒤 전공을 살려 인테리어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성은 씨가 작년 11월 졸업전시회에 들인 비용은 340만원입니다.
“3학년 끝날 무렵 졸업전시위원회를 구성해요. 4학년이 되면 위원회에서 1인당 40만 원씩 거두죠. 이렇게 모인 돈으로 전시회 장소 대관도 하고 재료를 공동구매해요. 전시회하고 남은 돈이라고, 5만원 돌려받았죠.”
▽ 300만원이 순 제작비인가요?
“졸업작품으로 팀 작품 150만원, 개인 작품 100만원, 작품 설명하는 전시판(패널) 50만원 씩들었죠. 하나씩 만드는데 든 비용이라기보다 제작 과정에 발생한 비용이에요.”
▽ 제작 과정이라면?
“3월부터 9월까지 계속 심사용 작품을 만들어요. 교수님한테 심사받고 수정하고 또 새로 만들기도 하는 거죠. 만들고 부시고 다 돈이에요. 부실 때마다 마음 아파요. 결국 추석 무렵 급하게 새로 다 만들었어요. 재료비도 일주일에 5만~10만원 정도 야금야금 들었죠. 칼심, 본드, 폼 보드 등 소모품에 들어간 비용은 정확히 기억도 안 나요.”
▽ 돈은 어떻게 구하셨나요?
“아르바이트해서 보태긴 했는데 거의 부모님이 주셨어요. 안 그래도 등록금도 400만원이 넘어 부담이실 텐데 졸업한다고 부담을 더 드려 죄송하기만 해요. 회사 월급 받아서 부모님 생활비로 조금 드리지만 제가 4년 동안 받아쓴 돈에 비하면 턱없이 적죠.”
▽ 제작비를 줄일 수는 없었나요?
“줄인다고 줄여도 많이들 수밖에 없어요. 돈을 많이 쓰게 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요. 교수님들도 작품에 돈 아끼지 말라는 식으로 말해요. 퀄리티가 낮아서 심사 통과 못하면 새로 만드는데 또 돈 깨지니까요. 학생도 돈 쏟아부을수록 멋있어진다 생각해요. 옆에서 누가 아크릴 덧대면 나도 덧대야 할 것 같고, 비싼 조명 달면 나도 달아야 할 것 같고. 돈을 쓰게 하는 묘한 분위기가 생겨요.”
▽ 졸업작품에는 만족하나요?
“돈 들여 작업하는만큼 한 만큼 실력이 늘기는 하죠. 근데 졸업작품이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인테리어 학과지만 3층 이상 건물이나 아파트 같은 고층 건물 벽면을 만들어야 해요. 규모가 커야 보여줄게 많거든요. 교수 눈높이에 맞도록 돈을 쏟아붓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시간은 촉박하고 요구하는 퀄리티는 높고 혼자서는 다 못 만들어요. 3D 프린트 업체에 20만원씩 줘서 작품 요소들 만들고, 커팅 가공 업체에 맡길 수밖에 없죠. 내 작품인데 다른 사람 손을 더 타요.”
▽ 전시회는 잘 마쳤나요?
"일주일 전시 동안 제 작품을 찾은 사람은 가족과 지인들뿐이었어요. 기업에서 나온 사람들은 다 교수 지인 분들이었죠. 그마저도 취업 연계는 활발치 않아요. 돈이라도 적게 들면 억울하지는 않죠. '우리도 논문으로 졸업 작품을 대체하자'는 내부 요구가 나왔어요. 후배들까지 졸업전시회에 돈 쏟아붓는 건 막고 싶었어요. 그런데 학과 측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요. 답답한 마음뿐이죠.”
뉴스래빗은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해 해당 대학 교직원 및 관련 교수 등을 취재했습니다. 권력 실세 자녀의 유명대 부정 입학 및 학점 특혜 의혹에 청년들 한숨 소리가 더 커진 요즘. 졸업작품 준비와 취업에 고군분투하는 대다수 평범한 대학생들을 도울 방법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한 교수의 입장은 이랬습니다.
"예체능 학과는 일반과와 달리 실습위주에 커리큘럼으로 시설비, 부자재비, 재료비 등이 많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졸업작품도 학과측에서 강요하는 부분은 없습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졸업위원회를 구성하고 전시회를 열도록 자율적으로 맡깁니다. 교수들은 학생들이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도울 뿐입니다."
학교 측 해명은 이랬습니다.
"예체능 관련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며 많은 돈을 쓴다는 사실은 알고 있습니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기준으로 학과마다 등록금 대비 인원수에 맞춰 1년 예산을 정하고 있습니다. 그 외 학과 내부적인 사항은 학과에서 판단합니다."
대학과 교수 측의 입장을 요약하면 "학생들이 힘든 건 알지만 관여하지 않는다"입니다. 뒷말을 때문에 교수나 학교가 개입할 수 없다는 거죠. 전시회 자체가 특정 업체를 끼고 하는 구조라 더 그렇습니다. 교수가 개입할 경우 선정 시비가 나온다는 거죠. 그래서 학생에게 전부 맡긴다는 설명입니다.
다른 교수는 "시대가 변한만큼 이젠 졸업전시회도 변해야한다"고 지적합니다.
"비싼 돈을 들여 졸업전시회를 여는 이유도 결국 '학생들을 위해서' 아닙니까. 학생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자발적인 참여가 있어야 합니다. 예전 관행들을 타파해야 합니다. 남들 눈 의식해 비싼 전시장 대관하는게 아니라 폐공장을 활용할 수도 있잖아요. 학생의 비용을 줄이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할 때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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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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