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 후 자유 허용되자 좌익폭력 난무, 엉망진창 사회…"김일성 만세" 시위도

입력 2016-10-21 16:30  



펭귄쌤이 전해주는 대한민국 이야기 (38)



대한민국 부정 등 친북 시위 잇따라

4·19혁명 이후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를 앞에 내세운 방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었습니다. 자유가 무제한 허용되자 좌익 이념을 추종하는 세력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민족 해방을 실현하고 식민주의를 청산하자며 한미경제협정 폐기를 주장했습니다. 이 협정을 맺은 장면 정부를 제2의 조선총독부라며 공격하기도 했지요. 1960년 12월에는 교사와 학생들이 여객선을 납치해 북한으로 가려 한 사건도 일어났습니다.

보다 못한 장면 정부는 무제한으로 허락된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고자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을 개정하려 했지요. 또 반공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반국가단체와 그 구성원을 찬양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막으려 했습니다. 이런 정부의 움직임에 또다시 찬반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시위에서 “인민공화국 만세” “김일성 만세”와 같은 구호도 나왔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을 노골적으로 부정하는 구호였지요.

이런 남한의 혼란과 좌경화에 힘을 얻은 북한은 남북연방제를 제안했습니다. 남북연방제는 남한과 북한이 당분간 각각의 국가 체제를 보존하면서 두 정부 대표들이 모여 민족의 경제와 문화를 서서히 통일해나가자는 방안이었습니다. 그런 북한의 제안에 남한의 일부 대학생은 남북 학생 회담을 제의하는 결의문을 채택했지요.

장면 정부는 남북 교류와 학생 회담을 허가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남북연방제는 북한이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내건 주장이었고 북한으로 회담하러 가는 학생들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라는 구호가 내걸린, 남북 학생 회담을 환영하는 궐기대회가 열렸습니다.

5·16 군사정변…“올 것이 왔구나”

자유를 넘어선 방종의 분위기, 끊임없는 데모와 시위,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경제 침체, 앞뒤 가리지 않는 남북 교류와 통일 운동 등으로 제2공화국의 정국은 엉망진창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정부는 이런 사회 분위기를 다잡고 통일 운동에 대처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무책임한 언론도 사회 혼란에 한몫을 했지요. 자유당 말기의 언론 통제에 대한 반발로 장면 정부는 언론의 무조건적 자유를 보장했습니다. 수많은 언론사가 여기저기서 생겨났습니다. 자유당 말기에 41개였던 일간 신문사는 400개 가깝게 늘어났지요. 이 많은 언론사가 일제히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마치 정부 비판이 언론사의 기본 업무인 듯 보일 정도였습니다. 사이비 기자들은 비리 폭로를 빌미로 주요 인사들을 협박하고 돈을 뜯어내기도 했습니다.

엄청난 사회 혼란으로 앞길을 예측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대다수 국민은 커다란 불안감과 위기감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 5·16 군사정변입니다.

1961년 5월16일 새벽, 김포에 주둔한 해병대 1개 여단을 주력으로 한 3000여 명의 병력이 한강을 건넜습니다. 박정희 소장의 지휘로 움직인 이 병력은 곧바로 육군본부를 점령하고 정부의 주요 시설을 손에 넣었습니다. 5·16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지요.

쿠데타 군이 서울로 들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장면 총리는 혜화동에 있는 수녀원으로 몸을 피했습니다. 그는 두 차례나 미국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유엔군이 쿠데타 군을 진압해줄 것을 요청했지요. 하지만 미국은 어디에 숨었는지도 모르는 한국 정부 책임자의 말만 듣고 한국 내부 일에 간섭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참모총장이던 장도영은 거사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쿠데타군을 진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쿠데타 지휘부는 16일 장도영과 함께 윤보선 대통령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들을 맞이한 윤보선 대통령은 “올 것이 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사실상 군부의 쿠데타를 받아들이는 뜻의 말이었지요.

윤 대통령 ‘5·16’ 진압을 거부

한때 주한 미국 대리대사 그린과 유엔군 사령관 매그루더는 쿠데타를 반대하고 장면 총리의 합법적인 정부를 지지한다고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매그루더는 유엔군의 작전 통제권 아래 있는 한국군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자신?권한을 침범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린과 매그루더는 윤보선 대통령에게 찾아가 쿠데타 군 진압을 명령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윤보선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습니다. “유혈 내전은 피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글= 황인희 / 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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