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도서 4주간 무료 합숙생활…실패로 겪는 열등감서 '탈출'
77개사 정부지원금도 받아…5년간 수료생 380여명 배출
최근 '재도전 엔젤펀드' 출범…내년부터 수료생 4명 지원
[ 이민하 기자 ]
경남 통영시 앞바다의 작은 섬 ‘죽도’에는 사업에 실패했지만 재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가 있다. 전원태 엠에스코프 회장(69)이 사재를 털어 설립한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다. 재기원은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을 모아 1년에 4~5차례씩 무료로 4주간 ‘재기힐링캠프’를 연다. 지난 21일 죽도에서는 재기힐링캠프 19기 연수생 15명의 수료식이 열렸다.
◆제각기 사연으로 찾은 죽도
이날 통영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한 죽도행 여객선은 거의 만석이었다. 19기 수료식을 축하하러 온 이전 기수들이 타고 있었다. 주성문 우진ENG 대표도 배에 있었다. 그는 2009년 부도 후 5년 동안을 폐인으로 지냈다. 주 대표는 “죽도에서의 시간 이후 재기해 사업부터 가정 생활까지 잃었던 것을 되찾았다”며 “죽도 재기원을 매번 올 때마다 친정에 온 느낌”이라고 말했 ? 그는 죽도에서 나와 층간소음재 생산·판매업체를 차렸다.
죽도에는 사연 없는 사람이 없었다. 2011년 문을 연 재기원은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진흥공단과 연계해 올 10월까지 380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이정훈 씨(가명·30)는 18기 수료생이다. 그는 26세 때 게임 사업을 시작, 4년 동안 회사를 운영했다. 게임 플랫폼 변화에 적응이 늦어지면서 결국 회사 간판을 내렸다. 이씨는 “회사를 청산하고 남은 건 빚뿐이었고 모든 것이 절망적이었다”며 “캠프에 들어와서야 그동안 남 탓만 했던 스스로의 미숙한 점들이 보였다”고 털어놨다. 그는 최근 온라인 주문 생산 의류사업을 시작했다.
◆힐링캠프, 돈보다 마음 먼저
재기원에 따르면 수료생들의 재창업 후 3년 생존율은 97.4%다. 일반 창업 3년 생존율 41%, 5년 생존율 25%를 크게 웃돈다. 재기원 수료생들은 그동안 건자재업체 우진ENG, 산양삼유통이력 프로그램 개발업체 심이요 등 170개사를 세웠다. 이 가운데 77개사는 정부의 재창업지원금까지 받았다. 지원금을 받은 재창업 업체 중 3년 내 문을 닫은 곳은 2곳에 불과하다.
재기원 측은 수료생의 재창업 생존율이 높은 이유를 심리적인 요인에서 찾았다. 힐링캠프 프로그램도 심리 치료에 맞춰져 있다. 창업 실패 후 겪었을 패배감과 열등감 등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라는 판단에서다. 입소 첫 주에는 대학교수와 전문경영인, 의사 등 외부 전문가들의 초청 강연과 상담이 이어진다. 2~3주차부터는 새벽 명상과 주·야간 행군 등을 통해 자기 성찰 시간을 갖는다. 4주차에는 죽도 내 자원봉사 활동과 극기훈련, 소망 실천 등이 짜여 있다. 합숙 기간에는 술·담배가 금지된다. 식사도 1일 2식으로 제한된다.
◆재기인 돕는 엔젤펀드도
재기원은 연 매출 1200억원대 중견기업을 일군 전 회장이 20억원을 출연해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전 회장이 재기원에 애착을 갖는 이유는 스스로도 몇 차례 사업에 실패했다가 재도전한 쓰라린 경험이 있어서다. 전 회장은 ‘재도전 엔젤펀드’도 만들었다. 재기원은 최근 충북 제천시에서 ‘재도전 엔젤클럽’ 발족식을 하고 초기 자금 1억1000만원으로 엔젤펀드를 출범시켰다. 전 회장과 재기원 수료생 33명 등이 엔젤펀드 투자자 모임인 ‘엔젤클럽’에 가입했다. 내년부터 4명의 재기 중소기업인을 선정해 5000만원씩 총 2억원 규모의 엔젤펀딩을 시작할 계획이다.
전 회장은 “재도전 엔젤펀드는 재기 사업인들끼리 자금을 모아 다른 재도전 창업자를 지원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죽도=이민하 기자 mina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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