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 경쟁이 '전쟁'이라할만큼 과도
대학도 '선발경쟁'에만 매몰돼 있어
백순근 <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
유난히 높은 하늘과 아름다운 풍광의 멋진 계절이 왔음에도 애써 무관심한 채 막바지 ‘전쟁’ 준비에 한창인 사람들이 있다. 북한이나 외국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입시를 앞둔 우리나라 수험생과 그 가족들이다.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20일 앞으로 다가왔다. 생사가 걸린 전쟁처럼 수능을 치러야 하는 결전의 날이 다가온 것이다. 대학 교육에 필요한 수학(修學) 능력을 측정해 선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고자 하는 수능이 하늘길의 비행기까지 멈추게 할 정도로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됐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연히 우리 사회가 지나치게 학력(學歷) 혹은 학벌(學閥) 사회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인성이나 역량보다 그 사람의 출신 대학 위상에 따라 미래의 직업이나 소득, 명예가 결정되는 일이 허다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 졸업장에 대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가치가 지나치게 높게 평가되기 때문에 대학입학을 위한 배타적 경쟁이 그 도를 넘고 있다. 자녀의 사교육비를 부담하기 위한 부모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고, 출신 가정이나 지역의 경제적 격차에 따라 학생의 학력 격차가 대물림되는 경향도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입학 정원이 정해져 있는 대학입시에서 신입생 선발은 불가피하게 배타적인 상대평가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어느 대학에 입학하느냐에 따른 미래 기대 가치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소위 ‘입시 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처럼 대학입시를 전쟁처럼 치르면서 시험 기술이나 전략은 탁월하게 발전시켰을지 몰라도, 21세기가 요구하는 글로벌 창의 인재가 갖춰야 할 인성이나 역량을 갖출 기회는 놓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 여기서 역량이란 어떤 일을 실제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이며, 개인이나 공동체가 지닌 지식, 기능, 태도 등이 통합돼 나타나는 종합적인 실천 능력이다. 국가수준의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자기관리 역량, 지식정보처리 역량, 창의적 사고 역량, 심미적 감성 역량, 의사소통 역량, 공동체 역량 등이 강조되고 있으나, 교육 현장에서는 암기와 문제풀이 위주의 수능 준비로 인해 이들이 너무 소홀히 다뤄지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 대학에서는 좋은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선발 경쟁’은 치열해도 제대로 교육해 우수한 인재로 육성, 졸업시키기 위한 ‘교육 경쟁’은 미흡한 수준이다. 그래서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는 어려워도 일단 입학하기만 하면 거의 졸업이 보장되기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연도보다 입학한 연도를 의미하는 소위 ‘학번’이 더 강조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대학에서도 제대로 된 인성과 역량을 신장, 발전시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중등학교에서 수능 준비 교육의 비중을 낮춰 인성과 역량 위주의 교육을 촉진하고, 대학에서도 선발 경쟁에서 교육 경쟁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학력 혹은 학벌 사회를 지양하고 인성과 역량 위주의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특히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10대 말에 치른 대학입시의 결과에 따라 나머지 80년 인생이 결정되도록 그대로 방치한다면 학력 혹은 학벌에 의한 일종의 계급사회라고 지칭해야 할 것이며,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출발점으로 선출직 공직자의 학력 기재부터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어떨까.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특정인을 지도자로 선출하고자 할 때 그 사람의 과거 특정 시점의 학력보다는 현재 지닌 인성과 역량, 미래지향적 리더십 등을 더 중요시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지도자를 선출할 때도 학벌부터 따지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모든 선출직 공직자의 선거 홍보물 등에 학력 기재를 법으로 금지한다면 학벌 중시 풍조를 약화시키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또 그것이 대학과 고등학교 교육을 정상화하는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백순근 <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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