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과 맛있는 만남] 임용택 전북은행장, 30년 증권맨서 전북은행장 변신…작지만 돈 되는 시장 개척 나서

입력 2016-10-27 18:38  

증권사, 기업 M&A 못하던 시절 공무원 끈질기게 설득 '1호 딜' 성사

국내 기업 M&A 업계 1세대
일본서 상사맨으로 사회생활 첫발…한국 돌아와 M&A 베테랑으로
대신증권 10여년 다니다 자문사 창업…연봉의 수십 배 벌다 외환위기로 고생

전북은행 변신 진두지휘
지방은행 첫 미니점포 도입 '성공'…서울 공략 위해 시중은행 지점장 영입
P2P시장 진출, 캄보디아 은행 인수…대형 은행 뛰어들기 어려운 시장 공략



[ 이현일 기자 ] 임용택 전북은행장(64)의 이력서에는 그가 50대 후반 나이가 된 뒤에야 직장명에 은행이 처음 등장한다. 그전까지는 30년 가까이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 몸담았다. 은행장이 된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임 행장은 보수적인 지방 은행에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전북 전주시 영화의거리 앞 음식점 ‘향리’에서 임 행장을 만났다. 자주 찾는 병어요리 전문점이라고 했다. “전주 사람들은 다른 지방 사람보다 비빔밥이나 콩나물국밥을 오히려 덜 먹습니다. 전북은행 직원들이 자주 가는 식당이라 이곳을 찾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퇴근길에 미리 준비한 냄비에 병어찌개를 담아 가 집사람과 나눠 먹을 정도로 좋아합니다.”

30년 증권맨, 은행장이 되다

임 행장은 그가 설립한 페가수스 사모투자펀드(PEF)를 통해 전북은행과 인연을 맺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자기자본비율을 높이기 위해 잇달아 유상증자를 했습니다. 전북은행도 2009년 증자에 나섰는데 당시 실권이 많았습니다. 주가가 4000원대 초반이었는데 주당 5000원에 증자를 추진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는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전북은행 사외이사로 경영에도 참여했습니다.” 전북은행 주식과 1 대 1로 맞교환한 JB금융지주의 현재 주가는 6050원이다.

임 행장이 전북은행과 인연을 맺은 과정을 얘기하는 동안 작은 접시에 담긴 육회, 홍어삼합과 함께 부추전, 닭발 무침, 물김치 등 밑반찬이 올라왔다. 육회를 한 점 입에 넣으니 싱싱한 소고기의 육질과 감칠맛이 느껴졌다.

임 행장은 서울과 전주를 오가기가 힘들어 2년 만에 사외이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퇴임 전 열린 행장추천위원회에서 1980~1990년대 대신증권에서 함께 일한 김한 KB금융 사외이사(현 JB금융 회장 겸 광주은행장)를 전북은행장으로 추천했고 그 인연은 새로운 인연을 낳았다. 전북은행장으로 취임한 김 회장은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인 임 행장에게 우리캐피탈(현 JB우리캐피탈)을 인수해도 될지 검토해 달라고 부탁했고, 인수 후에는 회사 경영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우리캐피탈이 2년 가까이 영업을 제대로 못 했지만 인수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만 전북은행으로선 거액인 900억원을 투자해야 하는 탓에 내부 임원의 반대가 심했어요. 김 회장은 인수를 결정했고 내게 회사를 부탁했어요. 고민 끝에 합류한 뒤 3년 만에 우리캐피탈은 한 해 700억원의 순이익을 내는 업계 2위 수준 회사가 됐습니다.”

임 행장은 JB금융지주 설립과 더커자산운용(현 JB자산운용) 인수 등에도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JB자산운용은 인수 2년 만인 지난해 만년 적자를 벗어나는 등 성공적인 M&A로 평가받는다. “더커자산운용은 당시 회사가 어려워져 옛 미래저축은행에 경영권을 뺏겼고 얼마 후 저축은행도 문을 닫아 예금보험공사로 지분이 넘어갔습니다. 이 과정을 놓치지 않고 추적해 공매로 회사를 인수했습니다. 그 후 제가 전북은행장까지 맡게 됐습니다.”

금융투자업계 역사의 산증인

메인요리인 병어찌개가 커다란 양은그릇에 담겨 나왔다. 주방에서 한소끔 끓인 뒤 테이블에서 다시 끓이는 방식이다. 빨간 국물을 한 숟가락 입에 넣으니 처음에는 양념의 매운맛이, 다음엔 단호박의 단맛이, 마지막엔 병어와 꽃게, 미더덕 등 해물의 시원한 맛이 났다.

JB금융지주의 기틀을 다진 계열사 M&A에 잇달아 성공한 비결을 묻자 이야기는 1980년대로 돌아갔다. 임 행장은 1985년 일본 도쿄 수출입상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신증권에 입사해 금융업에 발을 담갔다. 기업 M&A 업계에선 1세대로 통한다. “당시 금융당국도 M&A라는 개념을 몰라 무조건 하지 말라고만 했습니다. 1988년 한국에서 처음 정식으로 이뤄진 기업 지분거래인 한중물산 건을 중개하면서 김앤장에서 법률 의견서를 받아 제출하고 미국과 일본 사례를 조사해 보여줘도 금융당국은 꿈쩍도 안 했습니다.”

척박한 환경에서 10여년간 직장생활하며 기업금융 전문가로 성장한 그는 독립하겠다는 뜻을 품고 1996년 대신증권에서 퇴사했다. 이후 M&A 자문을 전문으로 하는 림앤파트너스를 창업한 것을 시작으로 십수년 동안 투자자문사, 벤처캐피털 등 금융투자 관련회사 다섯 곳을 설립해 운영했다. “대신증권에서 퇴사할 때 연봉이 3000만원이 안 됐습니다. 그런데 창업하고 1년 만에 M&A로 10억원을 벌었어요. 그 돈으로 투자자문회사를 차렸다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맞아 큰 손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50년 만에 돌아온 전주

금융투자업계에서 산전수전을 겪은 임 행장의 무용담이 끝나자 화제는 전주에서의 생활로 이어졌다. 임 행장은 밥과 함께 찌개를 먹으며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전주에서 지내다 서울로 이사가 50년을 살다 다시 내려왔어요. 외가와 처가도 이곳이라 친숙하고 서울에 비해 복잡하지 않아 편안합니다. 다만 은행업이 규제 사업인 데다 그 특성상 보수적인 성격이 강해 일하면서 역동적인 재미를 느낄 수는 없습니다. 소소한 농담을 할 수 있는 친구가 가까이 없다는 점도 아쉽네요.”

은행에 새 바람 일으켜

임 행장은 ‘재미없다’고 말했지만 전북은행 안팎에선 그 어느 때보다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북은행은 임 행장의 지휘 아래 수도권 지점 개설과 해외 진출, 중금리 대출시장 공략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증권회사 인수도 검토 중이다.

전북은행은 최근 3년 사이에 수도권과 대전·세종시 등에 20곳의 점포를 새로 내는 등 전국구 은행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광주은행과 부산은행 등이 벤치마킹하고 있는 직원 4~5명의 미니점포 전략은 전북은행이 먼저 도입했다.

“지방은행의 서울 투자은행(IB) 부서가 여러 차례 손실을 내면서 본사에선 ‘자꾸 사고 친다’며 서울 영업망을 줄이던 때도 있었어요. 전북은행에 와 보니 서울 지점이 빌딩 17층에 있고 1층은 저축은행이 영업하고 있어 놀랐습니다. 엉뚱한 곳에 투자한 게 잘못이지 서울 지점은 죄가 없습니다. 돈은 서울에 몰려있기 때문에 철수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 다른 시중은행 출신 지점장까지 영입해 수도권에 진출했습니다.”

저금리 시대와 핀테크(금융+기술) 발전에 대응하는 성장 전략도 확고했다. 지난 6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피플펀드와 협업해 최초로 은행 대출형 개인 간(P2P) 금융 상품을 내놨다. “금전적 이득은 없지만 스타트업의 전략을 참고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P2P업체와 제휴했습니다. 금융감독원의 승인을 받기 위해 1년 가까이 고생했죠.”

8월에는 캄보디아의 프놈펜상업은행(PPCB)을 인수하며 해외로 진출했다. “프놈펜은행을 기반으로 모바일 뱅킹 사업을 할 계획입니다. 캄보디아에선 소가 끄는 수레에 탄 젊은이가 스마트폰으로 채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캄보디아 같은 곳은 유선 인터넷을 건너뛰고 모바일 금융 시대로 바로 진입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정적인 수익원 확만?위한 국내 틈새시장도 계속 공략할 계획이다. “대형 시중은행이 뛰어들기 어려우면서도 전북은행과 같은 규모의 은행 실적에 도움이 될 만한 중간 정도 시장의 아이템을 찾고 있습니다. 사잇돌 대출은 1년 가까이 준비한 덕분에 7월 출시 후 신한은행에 이어 2위 실적을 거두고 있습니다. 건설 근로자 공제회에 가입한 일용직 종사자를 대상으로 마련한 전환대출 상품도 한 달에 20억원가량의 실적을 내고 있습니다.”

임 행장은 지역 밀착 영업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산토끼 잡는다고 집안을 버려두면 집토끼들이 금방 다 도망갑니다. 전북은행이 불황에 강한 이유는 지역 주민과 중소기업 영업 기반이 탄탄하기 때문입니다.”

전국구로 도약하는 전북銀, 수도권 19개 영업점 운영

전북은행과 광주은행을 거느린 JB금융지주의 JB는 ‘전북’이다. 전북은행이 설립한 JB금융지주는 2014년 광주은행을 인수했다. 금융권에선 자산 약 14조원의 전북은행(직원 1300여명)이 자산 22조원의 광주은행(직원 1800여명)을 인수한 것을 두고 골리앗을 이긴 다윗으로 비유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여파로 2000년대 초반 광주은행을 비롯한 많은 은행이 통폐합되고 예금보험공사 산하로 편입된 반면 전북은행은 공적자금을 받지 않았다. 22개 점포를 폐쇄하고 직원의 30%가량을 해고하는 어려움 속에서 자력으로 살아남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에서도 창립 이후 최대 실적을 거뒀다.

창립 47주년을 맞는 올해 전북은행은 자산 14조6000억원에 본사 포함 100개 지점 규모로 커졌다. 최근 수도권에도 19개 지점을 내는 등 전국구 은행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임용택 행장의 단골집 향리
신안 자연산 병어찌개에 육회·홍어삼합 곁들인 한상 '푸짐'

전북 전주시 고사동 영화의거리 인근 상가건물 에 자리잡은 음식점 ‘향리’는 병어요리 전문점이다. 전남 신안 앞바다에서 잡은 자연산 병어만 사용한다. 병어구이와 병어찜 등 다양한 요리가 있지만 햇감자와 호박, 꽃게를 곁들인 병어찌개가 이곳의 대표 메뉴다. 다양한 재료가 어우러져 얼큰하면서 시원한 국물 맛을 낸다. 여름이 제철이지만 미식가들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병어요리를 찾는다고 한다.

육회와 홍어삼합 등 주요리로 내놔도 손색없는 다양한 음식이 밑반찬으로 나온다. 20여년간 식당을 운영한 사장 강연순 씨의 손맛이 일품이다. 직원들에게도 요리할 때 손에 화장품을 사용하거나 매니큐어를 칠하지 못하게 한다. 청결함을 유지하고 음식의 향을 살리기 위해서다. 주변 회사 직원뿐만 아니라 정동영 국회의원, 손학규 씨 등 정치인들도 즐겨 찾는다. 병어찌개 1인분 2만5000원.

전주=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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