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 < IBK투자증권 연구원 swleesw@ibks.com >
올초 정보기술(IT)과 반도체 시장 여건을 바라보는 증시의 기대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하반기 들어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강세를 나타내고 있다. 반도체 가격은 수요와 공급여건에 따라 결정된다. 거시경제가 침체기에 접어들었을 때도 공급이 수요를 밑도는 경우가 종종 나타난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런 사례와는 확연히 다르다. 올해 D램 공급증가율은 작년과 비교해 훨씬 높기 때문이다. 공급이 크게 늘었지만 수요량은 그보다 늘어나면서 D램 가격도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시장, 활기 도는 이유 세 가지
최근 반도체 경기가 회복세를 보이는 것은 글로벌 경기침체와 상관없이 반도체 판매가 예상치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었지만 반도체 등의 수요가 늘어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PC 판매량이 생각보다 많았다. 둘째, 하향세에 접어들었던 중국 모바일기기의 판매도 바닥을 찍었다. 셋째는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 점을 꼽을 수 있다.
감소하던 PC 수요가 예상보 ?늘어난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미국을 중심으로 정부·기업용 PC 판매량이 예상치를 웃돌았기 때문이다. 게임을 하기 위한 용도로 고성능 그래픽카드를 탑재한 노트북 수요도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가트너에 따르면 올해 1분기 PC 출하량은 전년 동기 대비 12% 줄었다. 하지만 2분기와 3분기는 각각 6%, 5% 줄면서 출하량 감소폭이 줄고 있다. 물론 PC 출하량이 줄고는 있지만 예상보다 선방하고 있다. 하지만 PC 출하량을 훨씬 보수적으로 예상했던 D램 업체들은 PC용 제품 생산량을 꾸준히 줄여나갔다. 이 과정에서 PC용 D램의 공급부족 현상이 빚어졌다. 업계에서 가장 비관적으로 예상한 PC용 D램 수급여건이 역설적으로 하반기 D램 가격 상승을 주도한 것이다.
스마트폰 수요가 회복된 점도 반도체 가격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을 중심으로 스마트폰 판매량이 두드러진 회복세를 나타내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인 스트래티지어낼리틱스에 따르면 중국 스마트폰 판매량은 지난해 3분기 들어 전년 동기 대비 하락세를 보여왔다. 하지만 올 2분기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3분기에는 전년 동기와 비교해 판매량이 15% 늘어났다. 중국 당국이 차이나모바일, 차이나텔레콤 등 주요 통신업체에 스마트폰 보조금을 늘리도록 유도한 것이 스마트폰 판매 향상에 기여했다. 보조금 증가로 화웨이·샤오미 등보다 BBK, 르에코와 같은 고가 스마트폰 제품 생산 업체들이 더 많은 수혜를 입었다. 중국에서는 고급 스마트폰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이들 제품에 들어가는 D램과 낸드플래시 수요도 확대되고 있다.
데이터센터에서 사용하는 반도체 판매도 크게 늘었다.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의 등장 이후 빅데이터 등에 대한 산업에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세계 데이터센터 건설은 지금부터 2020년까지 연평균 20%씩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페이스북 등 IT 공룡업체들이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데이터센터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내년 반도체 수급 ‘맑음’
올 하반기 이후 반도체 관련 수요도 시장조사업체나 반도체 업체들의 전망은 물론 증권가 예상치도 확실히 넘어서고 있다. 거시경제 여건은 나아지지 않으면서 반도체 업체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수급여건이 좋아지고 있고 심지어 공급부족 사태도 빚어졌지만 불안한 경기여건으로 섣불리 증설 투자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물론 D램 미세화 투자는 이어지고 있다. 낸드플래시 증설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투자금 회수에 대한 확신이 없는 현실에서 무리하게 생산능력을 늘리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여건은 분명 기대 이상으로 좋지만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투자 규모를 적극적으로 늘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반도체의 수급 전망은 여전히 긍정적이다. 지금처럼 긍정적인 업황이 내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승우 < IBK투자증권 연구원 swleesw@ibk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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