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일도 오너십 갖고 하면 CEO길 열려
집안선 영문학자 바랐지만…
해외영업에 꽂혀 인생진로 바꿔
"사장 해보겠다 심정으로 하라" 선친 당부 되뇌며 40년…CEO올라
포기 모르는 해외영업통
거래처 임원 머무는 호텔 잠입
전화·장문 편지로 집요한 설득…경쟁사에 빼앗기던 물량 따내
우린 국내 1등 아닌 세계 9등
"2020년 세계 7위·해외매출 45%"
제2 내수시장으로 중국 공략 박차…중국어 연설·노래에 '관시 마케팅'
[ 안대규 기자 ]
“내가 사장이다.”
장병우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은 직원들과 회식할 때면 건배사로 이런 구호를 외치게 한다. 각자 회사 사장이라 생각하고 ‘오너십’을 갖고 일하라는 의미다. 신입사원과 면담할 때도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를 꿈꾸라”며 “임원이 되는 꿈을 꾸지 말고 사장이 되는 꿈을 꾸라”고 조언한다.
장 사장이 이처럼 큰 꿈을 주문하는 것은 그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는 영문학자가 되길 원하는 부친의 뜻과 달리 비즈니스맨이 됐다. 장 사장의 아버지는 고(故) 장왕록 서울대 명예교수다. 해외영업이 재미있어 그 길을 가겠다는 아들의 고집을 아버지는 꺾지 못했다. 대신 “이왕 할 거면 사장 한번 하겠다는 심정으로 일하라”고 당부했다. 장 사장은 “달걀을 자기가 깨면 병아리가 되지만 남이 깨면 달걀 프라이가 된다. 조그만 일을 할 때도 오너십을 갖고 주도적으로 해야 한다”고 속으로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는 아버지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일하다 보니 어느새 최고경영자(CEO)가 돼있었다고 했다.
“포기는 없다” 해외영업서 배운 끈질김
1973년 대학 졸업을 앞둔 장 사장은 럭키(현 LG화학) 수출부에 입사해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임용고시에 합격해 서울 대광고 영어교사로 부임하기 3개월 전이었다. “딱 석 달만 일하고 그만둔다”는 마음으로 입사했다. 입사 전에는 아버지의 뜻을 따를 작정이었다. 자신도 교사나 교수가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해외영업을 시작하니 빠져나올 수 없었다. 주문을 따면 따는 대로 기뻤고, 실패하면 오기가 생겼다. 이 길을 인생의 행로로 정했다.
장 사장은 “입사 첫해에는 365일 중 하루도 쉰 적이 없다”고 말했다. 입사 3년차에 뉴욕지사로 발령났다. 당시로선 파격적인 대우였다. 영업맨으로서 그의 악착같은 근성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1981년 금성사(현 LG전자)에서 수출 1과장을 맡으며 컬러TV 수출을 담당할 때였다. 당시 미국 대형 소매점인 JC페니에 납품할 기회를 경쟁사에 번번이 빼앗기자 오기가 발동했다. 그는 “분해서 잠을 못 잘 정도였다”며 “바로 사장실을 찾아가 거래처와 담판 지을 수 있도록 해외 출장을 보내달라고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JC페니 측 임원을 만나기 위해 그가 묵고 있던 호텔을 알아내 옆방에 투숙했다. 싱가포르 샹그릴라호텔이었다. 옆방에서 호텔 내부 전화로 집요하게 임원을 설득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날 밤 호텔에서 기계식 타자기를 빌린 그는 10장짜리 장문의 편지를 써 다음 날 아침 임원이 체크아웃할 때 전달했다. JC페니 임원은 그의 노력에 감동해 그해 금성사 컬러TV 5만대를 구매했다. 장 사장은 “벽이 가로막으면 뛰어넘거나 옆으로 에둘러 가지 절대로 포기는 안 한다”며 “열정과 끈기로 고객을 감동시켜야 우리 편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3월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으로 부임한 뒤에 터키 이스탄불에 테러와 쿠데타가 발생한 날에도 영업을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승객 안전을 우려해 국내 항공기가 모두 결항하자 터키항공으로 바꿔 현지로 날아갔다. 가족과 회사 임원도 그를 막지 못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장 사장의 뚝심으로 터키의 대표적 건설·에너지 기업인 STFA그룹과 7월 현지 합작법인을 세우는 데 성공했다.
“우물안 1등은 소용없다”
장 사장은 40여년 직장생활 중 38년간 해외영업 관련 업무를 맡았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린 것도 그의 이 같은 경력이 바탕이 됐다. 현대엘리베이터는 2007년 이후 9년 연속 국내 엘리베이터 시장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연 3만7000대 수준인 국내 엘리베이터 설치시장에서 올 상반기 시장점유율은 41.2%다. 티센크루프(27.8%) 오티스(11.0%) 등 경쟁사를 멀찌감치 따돌린 상태다. 분당 1260m를 오르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를 2018년까지 개발하기로 하는 등 기술 면에서도 앞서고 있다.
그는 “현대엘리베이터는 아직 세계 9위에 머물러 있다”며 “우리가 국내 1등이라는 사실이 가장 큰 위험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자만’은 개인이나 회사에 가장 지독한 병”이라며 “우물안에서 1등 해봤자 소용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현대엘리베이터의 해외 매출 비중은 23.2%다. 장 사장은 이 비중을 2020년까지 45%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그렇게 되면 현대엘리베이터는 글로벌 7위가 된다. 수백년 역사를 가진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 업체를 제외하곤 후발주자 중 가장 앞서는 것이다.
현대엘리베이터는 중국과 브라질에 생산법인을 두고 있고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인도 터키 등 7곳에 해외법인, 세계 47곳에 사무소가 있다. 그는 “중국 인도 터키 등 3곳은 투자를 확대해 규모를 키울 것”이라며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 사우디 이란 등 5개국에서 2020년까지 해당 시장 ‘톱 3’에 진입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중국어로 연설에 노래까지
장 사장은 지난달 중국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마련한 현지 워크숍 행사에서 중국어로 연설해 현지 직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즉석에서 덩리쥔(鄧麗君)의 ‘웨량다이뱌오워더신(月亮代表我的心)’이란 노래도 불렀다. 그는 “현지 영업을 위해 한 달간 중국어 과외를 받았다”며 “연설문을 달달 외웠다”고 했다.
요즘 장 사장이 가장 공들이는 곳은 중국 시장이다. 중국은 세계 엘리베이터 수요의 60%를 차지하는 최대 시장이다. 연간 설치 시장 규모만 60만대로 한국의 16배에 달한다. 해외 영업통답게 그는 중국 당국과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한 ‘관시(關係) 마케팅’을 구사해 성과를 얻기도 했다. 당초 입찰이 불가능했지만 중국 현지 업체와 협력해 수주를 따낸 것이다. 그는 “중국을 한국과 같은 내수 시장이라고 여기고 엄청난 투자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엘리베이터는 현지에 대규모 연구개발(R&D)센터를 설치해 한국에서 개발한 신제품을 중국 시장에 맞게 현지화하는 시스템을 갖추기로 했다.
안전, 안전, 또 안전
장 사장은 엘리베이터 사고에 대해선 지독할 만큼 철저하게 대응한다. 현대엘리베이터가 아니라 협력업체의 사고나 이용자 과실로 발생한 사고도 모두 직접 챙긴다. 그래서 주말이면 늘 긴장 상태다. 그는 “이상하게 휴일에 사고가 많이 난다”며 “2001년부터 엘리베이터업계에서 일하다 보니 엘리베이터를 타기만 해도 소음, 진동만으로 어느 부품에 문제가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수직으로 달리는 자동차’로 불리는 엘리베이터는 자동차처럼 부품이 2만개나 들어가기 때문에 부품 품질이 안전과 직결된다”며 “품질이 검증된 국산 부품을 100% 쓰는 곳은 국내에서 현대엘리베이터뿐”이라고 강조했다.
장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보고서 결재란을 7개에서 3개로 줄이고 보고를 문자나 이메일로 대체하는 등 내부 혁신에도 앞장섰다. 그는 “보고서에 결재란이 많은 회사치고 성공한 회사가 없다”며 “이제는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는 시대가 아니고 빠른 것이 느린 것을 이기는 시대”라고 말했다.
■ 장병우 사장 프로필
△1946년 11월 평안남도 남포 출생
△1973년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졸업
△1973년 럭키(현 LG화학) 수출부 입사
△1991년 금성사(현 LG전자) 해외영업담당 상무
△1995년 LG상사 생활기기그룹 전무
△2001~2006년 LG오티스엘리베이터 사장
△2006~2008년 오티스엘리베이터 사장
△2014~2016년 2월 현대엘리베이터 상근고문
△2016년 3월~ 현대엘리베이터 사장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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