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백척간두의 경제, 정치 리스크와의 악순환 고리 끊어야

입력 2016-11-08 17:35  

4분기 연속 0%대 성장…수출·소비·투자 '트리플 추락'
97년, 2008년 위기 모두 '정치 리스크' 탓 불안 가중
장기 저성장 속 중국에 따라잡힌 상황…경제고삐 다잡아야

오정근 <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경제가 가라앉고 있다는 비관적 진단을 내놓았다. 그동안 경제 낙관론을 견지해온 KDI다. KDI가 ‘경제동향’(11월호)에 ‘경기둔화’란 표현을 쓴 것은 지난 3월 이후 7개월 만이다. 한국 경제는 수출·소비·투자가 모두 감소하는 ‘트리플 추락’에 빠져들고 있다. 제조업 가동률은 70%까지 하락하고 기업들의 매출과 영업이익도 하락 일로다. 조선·해운·석유화학·철강 등 주력산업은 구조조정에 직면해 있고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해온 자동차·전자마저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3분기 성장률이 0.7%로 4분기 연속 0%대 성장에 갇혀 있다.

건설투자 성장기여도 0.6%, 정부지출 성장기여도 0.2%를 제외하면 -0.1% 역성장이다. 2013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일본의 아베노믹스로 2012년 1121원이던 100엔당 원화 환율은 2015년 935원까지 가파르게 하락했다. 올 들어서는 원화가 다소 절하돼 1110원대로 소폭 상승하고 있으나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 제품에 대해 가격경쟁력을 유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 결과 수출은 2년째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수조원대 적자 기업들도 속출하면서 신규 투자는커녕 기업 구조조정이 화급한 이슈가 됐다.


막대한 가계부채로 소비는 갈수록 둔화되고 있다. 대외적으로도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인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 유로존의 회복 지연, 세계교역 증가세 둔화, 신보호무역주의 대두 등 어느 한 곳 밝은 곳이 없는 실정이다. 한국 경제는 문자 그대로 백척간두에 서 있는 위기 국면이다.

한보 대출비리와 97년 위기

설상가상 내년 대선을 앞두고 최근 터져 나온 ‘최순실 사태’는 정치권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를 강타하고 있다. 대통령의 연이은 사과 등 국정 동력이 급격히 약해지고 있다. 노동개혁 등 구조개혁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천문학적인 혈세를 쏟아붓고도 부실화된 기업의 구조조정은 지연되고 있다. 12월엔 미국의 금리 인상이 예고돼 있고 일본은 경기회복 부진으로 양적완화 통화정책을 지속할 전망이다. 한국은 외국 자본 유출 우려로 오히려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어서 원·엔 환율이 하락해 빈사상태의 수출에 또다시 타격을 줄 전망이다. 이렇게 될 경우 1997년, 2008년 같은 위기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쟁이 격화돼 정치사회 불안이 가중되고 국정공백 사태까지 가는 최악의 정치위기가 오면 어김없이 姸╂㎟璲?뒤따른다. 1997년, 2008년이 전형적인 예다. 그리고 최근 다시 정치위기와 국정공백 사태를 맞고 있다. 어김없이 대선을 앞두고 있거나 정권교체기다.

1997년 1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씨의 한보그룹 개입 의혹과 국정개입 사태가 터지면서 정국은 혼란에 빠졌다. 검찰 조사와 국회청문회에서도 김현철 씨의 한보그룹 개입 의혹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말 대선을 앞둔 야당의 공세는 계속됐다. 5월 김현철 씨는 한보그룹 개입문제가 아니라 전례 없이 정치자금에 대한 증여세 포탈 혐의로 구속수감됐다. 집권 5년차 김영삼 대통령의 국정동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한보·삼미·진로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부도나고 수출도 급감했다. 노동개혁은 불발하고 부실기업 구조조정도 하지 못해 기업부실이 가속화되고 금융부실도 치솟았다.

광우병 시위 이은 외화자금 ‘썰물’

설상가상 미국 중앙은행(Fed)은 1994년 1월부터 1995년 4월까지 연방기금금리를 연 2.96%에서 6.05%까지 인상했다. 역(逆)플라자합의로 엔·달러 환율은 1995년 4월 달러당 83.59엔을 저점으로 상승하기 시작했으나 한국은 고금리·저환율 정책을 추진한 결과 원·엔 환율이 하락해 수출이 악화됐다. 마침내 외국 금융기관 대출금을 중심으로 외국 자금이 급격히 유출되면서 1997년 말에 위기가 발생했다.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은 4월18일 정부는 한·미 소고기 수입 협상 타결을 전격 발표했다. 4월29일 MBC의 ‘PD수첩’은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방영했다. 주저앉은 광우병 의심 소를 도축하는 장면, 인간 광우병 여성의 죽음 등을 방영해 한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이를 계기로 연인원 100만명이 참여하는 촛불집회가 3개월여 지속됐다. 그 후 법원은 방송 내용이 허위라는 점을 인정했지만 3개월여 지속된 촛불시위로 새 정부의 국정동력은 급격히 약화됐다.

한편 닷컴버블로 추락한 미국 경제의 회복을 위한 달러약세 정책 추진으로 원화가 절상되면서 2004년 1058원이던 100엔당 원화 환율은 2007년 789원까지 하락했다. 2004년 31.0%이던 한국의 수출증가율은 2005년 12.0%, 2006년 14.4%, 2007년 13.6%로 주저앉았다. 설상가상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수출 등 경제가 악화되고 광우병 촛불시위로 국정동력이 약해진 상태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외국인 주식투자자금과 은행대출금을 중심으로 외국인 자금이 급격히 유출돼 한국은 외화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2009년 성장률은 0.9%로 추락했다.

최순실 사태와 이로 인한 국정공백 사태는 1997년과 2008년의 국정공백 사태와 그 후 도래한 위기를 연상시킨다. 1997년 위기로 30대 재벌 중 절반이 문을 닫아 성장동력이 급격히 약화되면서 위기 이전 8~9% 성장하던 한국 경제는 5%대로 주저앉았다. 그 결과 100만명이 넘는 실업자가 발생하고 168조원이나 되는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이번에 다시 위기가 온다면 한국 경제는 1997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는 고도성장을 하던 끝이고 중국도 한국을 추격해 오지 못하던 때였다. 그러나 지금은 장기간 저성장이 지속돼 경제 체력이 떨어졌고 중국은 한국 경제를 바짝 뒤쫓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금리인상 등 외부요인 악화

내년 대선을 앞둔 정국은 한치 앞을 가늠하기 힘든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대선과 정권교체기를 맞아 정치·경제·사회 불안이 가중되면 외국인들은 어김없이 자본을 빼 나간다. 다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정치적 위기에서도 경제는 고삐를 단단히 다잡고 차질 없이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여야 국회의원들은 물론 노동조합, 시민단체, 국민 등 모든 경제주체는 다시 위기를 초래해 후손들에게 죄를 짓지 않도록 자중자애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오정근 < 건국대 금융IT학과 특임교수·한국경제연구원 초빙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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