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빈 생활경제부 기자) 야구 팬들은 요즘 삼성라이온즈를 ‘제일라이온즈’라고 부른다. 올해 초 제일기획이 이 팀을 인수한 뒤 붙은 별명이다. 삼성라이온즈는 올해 10개팀중 9위를 했다. 7년만에 가을야구를 하지 못하게 되자 “더이상 삼성라이온즈가 아니다”라며 제일라이온즈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삼성라이온즈는 한국 야구 최강팀이었다. 2011~2014년 연속 우승했다. 그러나 수익은 별개의 문제였다. 같은 기간 매년 100억 규모 손실이 발생했다. 다른 스포츠팀도 마찬가지였다. 이익이 나지 않았다. 삼성 그룹은 스포츠 투자를 줄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승마였다. 2010년 승마 선수단을 해체했지만 2014년 느닷없이 삼성전자는 승마협회를 떠맡았다. 팀도 없는데 회장 부회장은 삼성전자 사장과 전무가 맡는 일이 벌어졌다.외신에는 삼성에 없는 삼성 승마팀 기사가 나기도 했다.
결국 이 승마는 새로운 먹잇감을 찾는 검찰 손에 삼성의 심장 미래전략실을 내어주는 결과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다. “기업들은 최순실 사건의 피해자”라는 세간의 인식도 변하기 시작했다. 최순실의 딸 최유라를 지원한 여파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골칫덩이 스포츠단 제일기획에 넘긴 삼성
2014년부터 삼성은 스포츠 팀을 제일기획에 차례대로 넘겼다. 당시 삼성은 “스포츠단 수익이 일정치 않아 분리하겠다”며 사실상 스포츠 사업을 접는다고 발표했다. 같은해 제일기획은 프로축구단과 남녀 프로농구단을 인수했다. 이어 작년에는 남자 프로배구단과 야구팀을 떠맡았다. 이들 스포츠팀은 과거 그룹 소속시절만큼 큰 지원을 받기 어려워졌다. 성적은 나빠졌다. 선수들을 제대로 대우해 주지 못하자 박석민(야구) 정성룡(축구) 등 선수들이 팀을 떠난 여파였다.
올해 삼성은 스포츠단을 갖고 있는 제일기획을 매각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당시 매각실패가 수익성 없는 스포츠단 때문이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제일기획만 매각해도 계약 성사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포츠단까지 넘기려다보니 매력이 떨어졌다는 것. 그만큼 삼성 입장에서 수익성 측면으로만 보면 스포츠단은 골칫덩이였다.
그러나 삼성에 스포츠단은 단순히 수익사업이 아니다. 다른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마케팅과 사회공헌 등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또 브랜드에 대한 친밀도를 높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삼성은 이를 수익이 안난다며, 또 프로구단을 사회체육화해야 한다며 제일기획에 넘겼다.
벌써 삼성라이온즈 팬들은 분노하고 있다. 삼성이 올해 FA에 나오는 선수들을 팔아 돈을 마련할 것이라며 일어나지 않은 일을 현실이 될 것인양 말하고 있다. 차우찬, 최형우가 올해 FA 시장에 나온다. 이런 삼성이 국민체육, 수익성과 아무 관계없는 승마를 지원한 셈이다. 그것도 승마 전체가 아닌 국정을 농락하다시피한 최순실의 딸을 지원한 것에 대한 분노인지도 모른다.
◆선수단 없이 승마협회 회장사 맡아
삼성이 승마와 인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삼성은 1988년 승마 선수단을 창단했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대한승마협회 회장사(삼성전자)를 맡기도 했다. 그러다 2010년 승마 선수단을 해체했다. 그 뒤로는 승마 경기에는 관여하지 않고 재활승마 등 사회공헌활동에만 주력했다.
2014년 12월 삼성이 다시 승마협회에 등장한다. 정유라 씨가 인천 아시안게임 종목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지 세 달 만이었다. 삼성전자는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됐다. 작년 3월부터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과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가 각각 승마협회 회장과 부회장을 맡고 있다. 승마 선수단이 없는 회사가 승마협회 회장사를 맡는 일은 드물다는 게 업계 사람들의 얘기다. 직전에 회장사를 맡았던 한화 그룹은 한화갤러리아승마단을 운영하고 있다.
대한승마협회는 삼성이 회장사를 맡은 뒤 승마 대중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피겨의 여왕’ 김연아 선수같은 국민 승마선수를 배출해 승마종목을 알린다는 계획이다. 이 계획에는 회장사인 삼성에 마장마술 종목만 후원을 요청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마장마술은 정유라 씨의 전공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정 씨는 국제승마연맹 홈페이지에 자신이 한국 삼성팀에 소속돼 있다고 기재했다. 이 내용을 다룬 보도가 나오자 삼성 측은 “삼성에서는 승마 선수팀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반박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삼성이 정유라씨를 지원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존재하지 않는 ‘삼성 승마팀’은 또 거론됐다. 작년 2월 스페인 스포츠신문 톱이베리안은 삼성 승마팀이 스페인의 유명기수로부터 명마 ‘비타나V’를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세 달 뒤 비타나V를 탄 사람은 정씨였다. 5~6월 국제마술연맹 마장마술 대회에서 세 차례 비타나V를 타고 경기를 치렀다.
실제로 작년 9~10월 삼성은 최순실이 운영하는 회사 코레스포츠(현 비덱스포츠)와 스포츠 컨설팅 계약을 체결한 뒤 대가로 280만유로(35억원)를 지급했다. 대한승마협회 전무였던 박모씨가 계약이 성사되도록 다리를 놔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컨설팅비로 지급된 35억원은 실제로는 정씨의 말과 경기장 비용 등에 사용됐다고 알려졌다.
◆8년 만의 압수수색
의혹이 쏟아지자 검찰은 8일 삼성 본사로 들이닥쳤다. 박 사장과 황 전무의 집무실, 미래전략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삼성이 압수수색을 당한 건 2008년 ‘삼성특검’ 이후 8년 만이다. 검찰은 삼성이 최순실 측에 자금을 제공하고 불법 청탁 등 대가를 받았다고 보고 있다. 또, 비공개 기자 간담회에서 “협회를 통하지 않고 최순실 씨 모녀에게 직접 지원한 것은 삼성뿐”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삼성이 승마를 제일기획에 맡기지 않은 이유에 대해 제일기획 측은 “승마는 팀이 없어서 (제일기획이) 맡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끝) / lsb@hankyung.com
모바일한경는 PC·폰·태블릿에서 읽을 수 있는 프리미엄 뉴스 서비스입니다. [모바일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국경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