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노벨상에 대한 허언, 자기기만 그리고 희망고문

입력 2016-11-10 17:49  

빈약한 기초 투자, 80년대 후반 일본의 5%
세계가 인정하는 업적 없는 척박한 연구풍토
그나마 '개인 기초연구비' 증액을 주목한다

염한웅 < 포스텍 교수·물리학 >



정해진 기일이 돼 과학에 대한 칼럼을 써야 하는데, 국가가 위기상황이다.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 이래 빠르게 퇴보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와 이를 대체한 퇴행적인 권위주의 권력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최순실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 보면 직전이 노벨상 시즌이었다. 올해는 여느 때와 달리 언론의 논조가 사뭇 차분하고 성숙된 모양새였다. 일본인의 수상에 대한 질투 어린 시선과 왜 우리는 아직 수상자가 없느냐는 식의 앞뒤 없는 질타가 잦아들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노벨상에 대한 이해 수준은 아직 매우 낮은 것 같다.

올해의 노벨상 관련 언론 보도와 논설들을 정리해보니 여전히 두 가지 중요한 잘못이 있다. 우선 우리나라가 과학에 엄청난 투자를 했다는 주장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 규모를 국내총생산(GDP) 대비로 보면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에 국한한 얘기다. 더욱이 그 대부분이 기업의 기술개발 투자에 해당한다. 노벨상과 관련된 기초과학의 경우 정부의 투자에 의존하는데, 이 비중은 절대적으로 작다.

또 정부 투자 중 실제로 기초과학에 투입되는 부분은 아직 빈약하다. 확실한 통계자료는 구할 수 없으나, 몇 가지 공개된 자료로 추정하건대 일본의 기초과학 투자에 비해 아직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일본 경제와 과학기술의 황금기라 할 1980년대 후반 기준으로 하면 20분의 1 이하로 추정된다. 최근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일본의 노벨상들이 대부분 1970년대 말에서 1990년대에 이뤄진 업적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시기의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의 총량을 일본과 비교한다면 어이없는 숫자가 나올 것이다. 우리의 척박한 살림살이에 비해 기초과학이 많은 투자를 받았다는 정서도 있겠으나, 우리가 기초과학에 이미 많은 투자를 했다는 말은 진실이 아니다.

또 다른 언론의 노벨상 관련 몰이해는 노벨상이 치하하는 업적이 아니라 노벨상 수상자의 인물에 대한 집중에서 비롯된다. 우리의 노벨상 수상에 대한 논의도 우리 주변에 노벨상을 수상할 과학자가 누구인지에 집중하게 된다. 노벨상은 높은 수준에 도달한 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이 아니라 특정한 과학적 성과에 주는 상이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고 먼저 찾아봐야 할 것은 노벨상을 받을 과학자가 아니라 노벨상을 수상할 만한 우리 과학의 성과인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우리 과학계에는 기존에 노벨상을 받았던 과학적 성과에 비견된다고 세계의 학계가 칭찬하는 업적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 과학계 전체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투자총액의 문제와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투자가 기실 30년이 채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진다는 것에서 쉽?이해할 수 있다. 뚜렷한 성과가 없으므로 노벨상을 받을 과학자를 우리 과학계에서 지금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벨상이 과학자들을 그 수준에 따라 줄 세우는 것이 아니므로 ‘노벨상에 가장 가까운 과학자’와 같은 것도 없다. 여태까지 언론에서 거론된 ‘가장 노벨상에 가까운 과학자’니 ‘수상 가능성이 높은 과학자’니 하는 것은 따라서 전부 허언이며 자기기만이고 국민에 대한 희망고문이다.

노벨상 수상이 가능한 수준의 독창적인 과학 성과들이 만들어지기까지 앞으로 수년에서 10여년이 걸릴 것이다. 뛰어난 업적이 나온 후 노벨상 수상을 하기까지 평균 15년이 걸린다는 잘 알려진 통계에 기초하면 우리의 노벨상 수상에는 평균적으로 2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최순실 사태 이전이지만 미래창조과학부가 내년과 내후년 기초연구비, 특히 개인 기초연구비를 크게 늘리기로 했다는 최근의 소식은 매우 반갑다. 국가의 위기 속에서도 아직 소신과 철학을 가진 공무원들과 정책입안자들이 있다는 신호로 어려움 속에서 꿋꿋이 일하는 분들께 경의와 박수를 보낸다.

염한웅 < 포스텍 교수·물리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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