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엔진이 8기통에서 6기통으로 바뀌는 등 규정 변경으로 많은 변화가 생겼다. 레드불의 전성기는 레귤레이션 변화와 함께 빠르게 식어갔다. 메르데세스AGM페트로나스팀이 새로운 지배자로 군림했다. 규정 변화를 완벽하게 겨냥한 강력한 엔진이 힘의 원천이었다. 르노의 엔진을 사용하는 레드불은 형편없는 출력으로 고전했다. 이건 스쿠데리아페라리말보로팀도 마찬가지였다. 키미 라이코넨은 수시로 엔진에 대한 불만을 터뜨렸다. 팀 라디오로 “내게 출력을 더 내놔!”라고 말하기도 했다.
레드불은 머신의 경쟁력 저하와 함께 드라이버 라인업에도 지형변화가 생겼다. 세바스찬 베텔의 동료이자 라이벌이었던 호주 출신의 드라이버 마크 웨버가 은퇴했다. 그 자리를 다니엘 리카르도가 채웠다. 커다란 미소를 가진 리카르도도 베텔과 같은 과정을 밟아 F1에 등장했다. 동료이자 라이벌을 맞은 베텔은 예전 같지 않았다. 선두권은 메르세데스의 루이스 해밀턴과 니코 로즈버그에게 내어준 채 치열한 3위 경쟁을 했다. 이 과정에서 신예 리카르도는 베텔에 앞서갔다. 리카드로는 팀에 귀중한 포디움과 우승까지 헌납했다. 새로운 머신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한 베텔의 입지는 예전 같지 않았다. 어느 날 베텔은 페라리를 한 대 샀다. “오래전부터 페라리를 사고 싶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베텔은 레드불을 등지고 이탈리아 마라넬로로 향했다.
팀 동료이자 라이벌에서 적이자 라이벌로 경쟁구도가 바뀐 베텔과 리카르도. 서로에 대한 경계심과 비난을 서슴치 않았다. 승리에 타는 목마름을 가진 야수들의 울부짖음이었다. 프로 선수들의 경쟁 세계는 모두 이러하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이 둘의 으르렁거림은 유독 날카롭다.
지날 달 멕시코GP에서도 날 선 비난의 화살이 오고갔다. 이 과정에서 베텔은 3위 포디움으로 샴페인 파이트를 벌인 뒤 4위로 강등된 데 이어, 5위로 내려앉았다. 그가 내려온 3위를 차지한 건 리카르도였다.
사건은 이랬다. 베텔이 멕시코GP 마지막 단계에서 추월을 노리던 리카르도에게 ‘위험하고 난폭한’ 드라이빙을 했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로 인해 베텔은 ‘10초 패널티’를 받았고 5위로 내려갔다. 그가 4위에도 머물지 못한 이유는 또 한 명의 레드불 드라이버인 막스 베르스타펜 때문이었다. 그는 베텔과 경쟁하는 과정에서 ‘5초 어드밴티지’를 받았다.
주최 측의 이 같은 결정은 F1의 레이스 감독관인 찰리 화이팅이 최근 미국GP에서 언급했던 규정에 근거한 것이다. 이 때 그는 “제동 중에 어떠한 방향 변화라도 다른 드라이버에게 비정상적이며 위험하다고 인식되어 회피 행동을 취하게 해선 안 된다”는 관리 지침을 마련했다. 비디오 분석에 따르면 베텔은 4번 코너에서 제동 중에 방향을 바꿨고 감독관은 이 부분에서 잠재적인 위험성이 간주된다고 판단했다.
베텔은 10초 패널티와 함께 벌점 2점도 받았다. 그는 최근 12개월 동안 벌점 6점을 받았다. 페라리는 반발했다. 마우리찌오 아리바베네 페라리 감독은 “관료주의가 팀의 포디움을 강탈해갔다”며 “이 결정은 너무 가혹하고 불공정하다”고 토로했다. 베텔도 “그 때 상황은 허용 범위 내라고 생각했다”며 “코너에 여유를 만들지 않으려고 그 틈에 뛰어든 것이며 리카르도는 당시 그 코너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따”고 말했다.
리카르도도 맞불을 놨다. 그는 “베텔은 3위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리카르도는 “나는 그가 문을 열어놓은 걸 보았고 그걸 통과하기 위해 집중했다”며 “하지만 베텔은 문을 닫았고 나는 갈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멕시코GP에서 3위로 승진한 리카르도. 그는 시즌 전체 순위에서도 니코 로즈버그와 루이스 해밀턴에 이어 드라이버 3위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그는 다시 한 번 레드불의 넘버1 드라이버이자 올 시즌 F1의 넘버3 드라이버임을 보여줬다.
이제 F1은 두 번의 대회를 남겨놓고 있다. 다음 대회는 11~13일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열린다. 해밀턴이 가장 존경하는 드라이버는 브라질 출신의 아일톤 세나이다. 세나의 고향, 인터고라스서킷에서 해밀턴이 다시 한 번 우승하며 4번째 월드챔피언 등극을 위한 희망의 불씨를 살릴 수 있을까. 로즈버그가 우승해 생애 첫 월드챔피언을 확정지을 것인가. 운명의 날이 다가왔다.
최진석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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