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 폐기' 핵심 공약인 트럼프 후보 당선으로 미국 의회비준 물 건너 가
시진핑 이달 APEC에서 RCEP 타결 촉구 할 듯
'중국 경제동맹' 강화 모색…미국, AIIB 참여 가능성도
[ 베이징=김동윤 기자 ] 중국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무역질서를 재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공약한 대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폐기할 가능성이 높아지자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다시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빈자리 파고드는 중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1일 중국 정부의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그동안 정체 상태에 빠져 있던 RCEP를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다시 추진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이달 19, 20일 페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자리에서 RCEP의 조속한 타결을 의제로 제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과 중국은 그동안 아·태지역의 무역질서를 자국 중심으로 짜기 위해 각기 다른 다자간 무역협정을 추진해왔다. 미국은 일본 싱가포르 베트남 호주 등 총 12개국이 참여하는 TPP를 작년 10월에 타결해 각국 의회의 비준만 남겨놓은 상태였다. 중국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 10개국과 한국 일본 호주 등이 참여하는 RCEP를 추진했지만 주요 국가들이 TPP로 기울면서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지난 8일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트럼프 당선자는 핵심 공약으로 TPP 폐기를 공언해왔다. 유세 과정에서 무역협정이 미국 내 일자리를 빼앗아간다고 주장해왔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전에 “TPP 의회 비준은 임기 내에 매듭지을 것”이라고 밝혔지만 공화당은 비준안을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로 넘긴다는 방침이다.
FT는 “트럼프 당선으로 중국이 아·태지역의 무역질서를 재편할 주도권을 쥘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평가했다.
아시아 국가들도 다시 관심
그동안 TPP 발효를 기다리던 아·태 주요국에서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RCEP를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문가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TPP 체결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일본은 지난 10일 하원격인 중의원에서 TPP 협정 비준안을 통과시켰다.
일본 산케이신문은 “TPP를 주도했던 미국에 대한 신뢰감이 약해지면서 아·태 지역에서 중국의 존재감이 한층 강해졌다”며 앞으로 일본 정부가 RCEP 협상 타결에 나설 수 있다고 시사했다. 중국 측에 높은 수준의 시장 개방을 요구하면서 RCEP 협상을 교착상태에 빠뜨린 일본이 입장을 바꿀 경우 RCEP는 급물살을 탈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시아데일리 역시 윌리엄 케이스 홍콩시립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TPP는 이제 확실히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한다”며 “말레이시아는 RCEP 체결이나 양자 간 협정 체결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젠핑 중국 상무부 학술위원회 부주임은 “RCEP가 올해 말 초안을 마련하면 앞으로 역내 경제통합과 세계 경제무역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美, AIIB 참여해 실리 챙길까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은행에 대항하기 위해 지난해 초 출범시킨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트럼프 당선을 계기로 더욱 힘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당장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 미국이 AIIB에 합류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의 국가안보 고문인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지난 10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기고문에서 “오바마 정부가 AIIB 설립에 반대한 것은 ‘전략적 착오’”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차기 미국 정부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구상에 대해서도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기 바란다”고 전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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