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진모 기자 ] 시민 100만명이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까지 사태를 키운 것은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의 안이한 상황 인식과 대응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두 차례에 걸친 어설픈 대국민 사과는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는커녕 더 악화시켰다. 여권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최순실 씨의 국정농단 사건을 ‘특정 개인의 위법 행위’라고 말해 대통령 본인도 피해자라는 뉘앙스를 줌으로써 국민이 더 분노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2차 대국민 담화에서 특검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국정을 계속 장악하겠다는 의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하야(下野)·퇴진 목소리가 높아졌다.
정치권에 던진 수습책으로 스텝이 완전히 꼬였다. 1차 대국민 사과 이튿날인 지난달 26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대통령은 당적을 버리고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침묵했다.
그리고 1주일 뒤 야당과의 상의 없이 ‘김병준 카드’를 불쑥 던졌다. 야당은 불통내각이라며 청문회 거부 방침을 정했다. 청와대는 뒤늦게 여야 영수회담으로 돌파구를 모색했지만 야당에 퇴짜를 맞았다. 박 대통령은 국회의장을 찾아가 ‘국회 추천 총리’를 수용하겠다고 양보했지만 야당은 ‘탈당’ ‘2선 후퇴’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며 장외로 향했다.
여권 관계자들은 “박 대통령이 사태 초기에 문 전 대표가 제안한 거국중립내각을 받아들였다면 정국 혼란이 이처럼 심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문 전 대표는 이제 박 대통령에게 국군통수권까지 내려놓으라고 압박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시간을 끌면서 벼랑 끝으로 몰리는 상황이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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