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미국 클린턴 지지자들의 이중잣대

입력 2016-11-14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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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서 국제부 기자 cosmos@hankyung.com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다.”(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선거 기간에 투표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발언하자 민주당 진영은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여론조사에서 클린턴의 우위를 확인한 클린턴 지지자들은 트럼프를 ‘비민주적’ 인물로 몰아붙였다. 품격 있는 민주시민을 자처하며 선거 결과 불복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클린턴 지지자들의 기대와 달리 클린턴은 지난 8일 참패했다. 218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해 289명을 얻은 트럼프에게 무너졌다. 트럼프를 맹비난했던 만큼 겸허히 결과를 수용할 것이란 기대도 함께 무너졌다. 트럼프 당선이 확정됐는데도 클린턴은 곧바로 축하해주지 않았다. 존 포데스타 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은 “(트럼프의) 승리를 단언하기 어렵다”며 “오늘 밤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겠다”고 했다.

클린턴 지지자들은 개표 다음날부터 거리로 나섰다. 미국 전역에서 수만명이 참가한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는 구호를 외쳤다. 트럼프를 닮은 인형을 불태우거나 고속도로를 점거하기도 했다. 미국 국기는 화염에 휩싸였다. 오리건주 포틀랜드 경찰은 시위가 격해지자 폭동으로 간주했다. 사흘째 이어진 시위에서 전국적으로 수백명이 체포됐다.

클린턴 지지자들은 트럼프의 선거인단을 회유해 다음달 19일 선거인단 투표에서 클린턴을 찍도록 하는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 워싱턴포스트 조사에서 클린턴 지지자 중 33%가 트럼프를 ‘합법적 승리자’가 아니라고 답했다. 클린턴의 전국 득표율이 47.7%로 트럼프의 47.5%보다 더 높았다고 해도 엄연한 승리자는 트럼프다. 트럼프는 주(州)별 승자독식제라는 합법적인 선거제도를 통해 당선됐고, 클린턴 지지자들도 이를 알고 있다.

클린턴 지지자들은 그토록 믿었던 엘리트 정치인 클린턴이 ‘아웃사이더’이자 ‘막말꾼’인 트럼프에게 당한 역전패를 심리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한때 불복을 시사한 트럼프와 뭐가 다를까.

박종서 국제부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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