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상식책 12만권이상 습득
매일 신문 20개씩 읽고 시사 공부
지식 암기 넘어 스스로 의미 분석
개발자 "정답 도출과정 놀라워"
2020년 법률·금융 전문가로 육성
[ 박근태 기자 ]
인간이 인공지능(AI)과의 대결에서 또 한 번 무너졌다.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승리한 지 8개월 만에 이번에는 개발된 지 3년 된 AI가 퀴즈 대결에서 인간을 이겼다.
18일 오후 대전 유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EBS 장학퀴즈에서 ETRI가 주도해 개발한 AI ‘엑소브레인’이 600점 만점 중 510점을 받으며 함께 실력을 거룬 네 명을 압도적인 점수차로 이겼다.
엑소브레인은 이날 장학퀴즈 우승팀 참가자인 김현호 군(안양 동산고 3학년)과 이정민 양(대원외고 2학년), 2016년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은 윤주일 씨(서울대 인문학부 1학년), 방송사 두뇌게임 프로그램에서 준우승한 오현민 씨(KAIST 수리과학과 휴학) 등 네 명에 맞서 전체 주·객관식 30문제 가운데 25문제의 정답을 맞혔다. 총 350점을 받아 2등을 차지한 윤씨를 160점 차이로 따돌렸다.
엑소브레인의 승리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이날 오후부터 시작한 리허설에서도 총 15문제 중 14문제를 맞히며 일찌감치 경쟁자들의 기선을 제압했다. 2013년부터 개발에 들어간 엑소브레인은 알파고처럼 딥러닝(deep learning: 인공지능이 외부 데이터를 분석해 스스로 의미를 찾는 학습 과정) 기술을 이용해 학습한다. 3년간 12만권 분량의 백과사전과 한자사전, 상식사전을 공부했다. 시사 상식을 보충하기 위해 9월 말까지 20개에 이르는 신문을 매일 읽기도 했다.
이번 대결은 국어와 역사, 경제 상식 등의 문제를 듣고 15초 안에 답을 쓰는 방식으로 치러졌다. 엑소브레인은 30개 문항 중 객관식과 주관식 각각 2개 문제, 심층 주관식 1개 문제 등 총 5개 문제를 틀렸다. 연구진은 엑소브레인이 자연어로 된 문제의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서 답을 찾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엑소브레인은 질문을 인식한 뒤 주어, 목적어, 동사 등에서 핵심 단어를 찾아낸다. 미리 공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서 핵심어가 많이 들어 있는 후보 답 수백 개를 골라내고 다시 최종 답을 유추하는 방식이다. 이날 틀린 객관식 문제 중 하나인 P파와 S파 등 지진파를 고르는 문제는 간단한 지식만 있으면 쉽게 푸는 문제였지만 영어 P와 S로 문장을 잘못 인식해 답을 찾지 못했다. 연구 책임자인 박상규 ETRI 책임연구원은 “엑소브레인은 80~85% 정확도를 보였고 답을 찾는 데 5초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점자인 윤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기억력이 뛰어난 AI가 실수를 전혀 하지 않아 대회 도중 중압감을 느낄 정도였다”고 말했다.
엑소브레인은 자신을 개발한 연구진까지도 깜짝 놀라게 했다. 리허설에서 ‘중성수소에서 나온 파로 우주의 나선 구조를 밝힌 전파를 답하라’는 질문에 숫자와 길이 단위로 표현한 ‘21㎝’라는 뜻밖의 답을 냈다. 모두가 이상한 답이라며 틀렸다고 봤지만 실제 확인한 결과 엑소브레인만 정답을 냈다. 박 책임연구원은 “어떻게 답을 얻었는지 연구자들도 미처 몰랐다”며 “답을 찾는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엑소브레인이 완벽해지려면 더 많은 지식을 쌓아야 한다. 2011년 퀴즈쇼 제퍼디에 출전한 IBM의 AI 왓슨은 엑소브레인의 아홉 배에 가까운 지식을 습득했다. ETRI는 2022년까지 엑소브레인에 영어 지식을 추가하고 법률과 금융 전문지식을 습득시켜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는 법률·금융 전문가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ETRI는 이날 엑소브레인이 받은 상금 2000만원을 수해가 난 울산 지역 고등학교에 기부하기로 했다. 이번 퀴즈 대결은 다음달 31일 저녁 EBS 장학퀴즈 특집방송을 통해 방영된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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