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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수익비율(PER)은 최악의 지표입니다.”
스위스 투자은행(IB) 크레디트스위스의 미셸 러너 홀트(HOLT) 사업부 대표는 “주당순이익(EPS) 같은 재무제표 상의 실적은 기업들이 감가상각비 등을 조정해 얼마든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수치”라며 “(주가를 EPS로 나눈) PER을 보고 어떤 기업의 주가가 싼 지 비싼 지를 가늠하는 것은 잘못된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러너 대표는 2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에 비해 현금흐름 투자수익률(CFROI)은 기업의 장기적인 성과와 기업 가치를 측정하는 데 탁월한 지표”라고 주장했다.
CFROI는 로버트 헨드릭스 등 4명의 시카고대 교수가 1970년대 개발한 지표로 기업들이 투자 대비 얼마나 안정적으로 현금을 창출하는 지를 나타 슈? 자금조달비용에 비해 CFROI가 높으면 기업들이 부를 창출하며 주주들에게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뜻이다. HOLT는 CFROI를 기반으로 한 기업 분석 및 가치산정(밸류에이션) 분석틀로 2002년 크레디트스위스가 사들였다. CFROI를 개발한 교수 4명의 성을 따 이름 지었다. 전세계 2만여개 기업의 데이터와 투자 시스템을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에 제공한다.
러너 대표는 “지난 20여년간 전세계 기업들의 매출 대비 이익률은 상승했지만 현금창출능력은 그대로”라며 “그만큼 생산성이 떨어졌지만 PER은 이런 추이를 잡아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CFROI는 매출과 마진은 물론 생산설비의 효율성까지 모두 분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너 대표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패시브 투자에 대해서도 “투자자들을 오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배당주 상장지수펀드(ETF)가 지속적으로 배당할 수 기업을 편입하고 있는 지 정확히 분석해야 한다는 것. 그는 “투자를 미루고 부채를 늘려 배당을 하는 기업들도 많은데 당장의 실적과 주가 부양을 위해 미래 성장을 갉아먹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너 대표는 “HOLT는 ‘ETF 분석기’를 통해 각 ETF가 배당주, 가치주 등 투자 목표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지 분석한다”고 강조했다.
러너 대표는 “최근 패시브 투자가 늘면서 액티브 펀드매니저들의 고민이 깊은데 액티브 매니저들은 단순한 지대추구자(rent seeker)가 아닌 이해관계자(stakeholder)로서 기업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기업 가치를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패시브 투자는 절대 모방할 수 愎?영역”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액티브 매니저들이 패시브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위탁운용사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결론을 도출하고 종목을 고르는 탄탄한 프로세스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며 "HOLT를 사용하면 전세계 2만개 종목에 대한 잘 다듬어진 데이터와 탄탄한 투자 시스템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시경제 전략가이기도 한 러너 대표는 “한국 주식 시장은 ‘가치함정’에 빠져있다”고 진단했다. 전반적으로 주가가 싸지만 ‘박스피’를 벗어날 뚜렷한 촉매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는 “한국에는 CFROI가 자금조달비용과 거의 비슷한 가치주 성격의 종목이 많은데 이런 종목들은 경기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경기 회복기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세계 경제는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어 기업들의 혁신적인 구조 변화 없이는 가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러너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기업들이 스스로를 도와 혁신하는 스토리를 좋아한다"며 "한국의 화장품주가 최근 2~3년동안 시장 수익률을 웃돈 것도 스스로 사업 구조를 혁신해 글로벌 플레이어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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