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고급 달력 삼킨 김영란법

입력 2016-11-2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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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금융부 기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더치페이(각자 계산) 확산과 직장인들의 저녁 문화 등 사회 곳곳에 적지 않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죠.

김영란법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또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달력 시장입니다. 여느 해 같으면 연말 특수를 누려야 할 시기지만 올해 사정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기업 구조조정과 경기 둔화에 김영란법 시행이라는 악재까지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사실 달력 시장은 최근 몇년간 조금씩 움츠러드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 확산으로 종이 자체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영향도 있죠. 여기에 김영란법까지 시행되면서 선물용 달력 수요가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은행들은 연말이면 우수고객(VIP)을 대상으로 한 별도의 달력을 주문해왔습니다. 일반 달력보다 고급 용지를 사용하는 데다 유명 작가의 작품을 담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면 달력 한 부의 제작 가격이 10만원을 웃돌기도 합니다. 김영란법에서 정한 선물 허용 금액인 5만원을 초과하는 금액입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은행들은 올해 기존에 제작하던 VIP 대상 달력 주문을 중단했습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선물용 달력을 아예 제작하지 않을 測?없어서 유명 작가를 배제하고 용지 단가를 조정해 제작 가격을 확 낮췄다”고 전하더라고요. 비슷한 이유로 매년 단체 주문하던 다이어리 등을 제작하지 않은 은행들도 많습니다.

물론 일반 달력에 대한 제작 수요는 여전합니다. 은행 영업점에서는 연말이면 달력을 찾는 고객들이 꽤 있거든요. 은행 입장에서도 은행 로고 등이 인쇄된 달력은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입니다. 일반 가정집은 물론 사무실에 1년 내내 걸려 있는 달력을 통해 지속적으로 은행 로고 등을 노출시킬 수 있거든요.

아예 새로운 시도를 하는 은행도 있습니다. 한국씨티은행이 대표적입니다. 씨티은행은 2017년도 달력과 다이어리를 제작하는 대신 여기에 드는 비용을 자연보전기관인 세계자연기금(WWF)에 기부하기로 했습니다.

씨티은행 관계자는 “대부분 고객이 스마트폰을 갖고 있어 앱(응용 프로그램)으로 일정을 관리하기 때문에 별도로 달력을 제작하지 않기로 했다”며 “달력 제작 비용의 일부를 기부하고 나머지는 디지털 사업 강화에 사용할 방침”이라고 말했습니다. 디지털 사업을 강화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면 결국 그 혜택이 고객에게 돌아간다는 설명이었습니다. 디지털화 등 구조적인 변화와 맞물려 김영란법 시행이 주변의 많은 부분을 바꿔놓고 있는 듯 합니다.(끝)/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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