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 1년간 의견 수렴'제로'
국정교과서 찬성했던 교총도 공개 이후 "수용 못한다" 반기
청와대와 현장 간 정책 조율 못해
'4류 부처'로 전락한 교육부
내부 출신 장관 역대 단 한명, 정부 부처 서열 3위의 '굴욕'
교원 인사권 가진 교육감…교육부는 현장 영향력 줄어
[ 박동휘 기자 ] 지난 28일 공개된 국정 역사교과서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교육부에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깜깜이’ 집필에 이어 의견수렴 과정도 불통으로 일관하는 등 사태를 더 꼬이게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1년가량 준비했으면서도 보수 성향인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조차 설득하지 못해 국정 역사교과서 ‘수용 불가’로 돌아서도록 한 게 대표적 사례다.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이 ‘질서있는 퇴진’을 발표하면서 국정 역사교과서 자체가 사장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도 나온다.
끝까지 ‘불통’ 교육부
하윤수 교총 회장은 29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48년 8월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일로 명기한 것은 독립운동의 의미를 깎아내린 痼막?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하 회장은 “다음달 5일까지 18만 교총 회원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한 뒤 교육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국정 역사교과서를 제작하기로 한 지난해 10월만 해도 교총은 찬성한다는 성명을 내놨다. 교총이 회원 대표 1005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62.4%가 찬성했다. ‘우군’이던 교총이 정작 교과서 공개 이후 ‘적군’으로 돌아선 것이다. 하 회장이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교육부가 교총 회장을 설득하지 못한 것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치명타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중학교 교장은 “내용을 보니 생각보다 중립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며 “교육부가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가며 의견을 수렴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도 이날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투쟁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 교사는 “국·검정 혼용 방안도 거론되는데 학교에서 선택하도록 하면 국정교과서를 고르는 곳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년여 전 우편향·역사왜곡 논란을 불러와 일선 학교에서 외면받은 교학사 교과서처럼 일선 교장이 전교조의 조직적인 반발을 견뎌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청와대에 휘둘리고, 교육감에 치이고
교육계에선 교육부의 정책 조율 기능이 마비됐다고 지적한다. 교총이 찬성 조건으로 집필 기준 및 내용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교육부는 집필진조차 공개 당일 발표할 정도로 끝까지 ‘깜깜이’로 진행했다. 다음달 23일까지 하는 온라인 의견 수렴도 냅갰罐?볼 수 있도록 했다. 이날 하루에만 340여건의 의견이 올라왔지만 교육부는 “제시된 의견 건수만 공개하고 내용은 최종일에 밝히겠다”고 했다.
관가에서는 교육부가 무능한 이유로 교육정책의 특수성을 꼽는다. 국정교과서, 누리과정 등 주요 교육 아젠다가 청와대의 결정 사항이라는 얘기다. 한 정부 인사는 “역대 교육부 장관 중 교육관료 출신은 서남수 장관(2013년 3월~2014년 7월)이 유일하다”며 “오죽하면 차관 자리까지 외부에 뺏겼겠느냐”고 했다.
교육부가 ‘4류 부처’라는 혹독한 평가도 나온다. 기획재정부처럼 내부 출신이 장관에 오르고 다른 부처 차관 자리에까지 보내는 곳은 ‘1류’, 내부 출신이 장·차관이 되는 곳은 ‘2류’, 차관 자리라도 지키는 곳은 ‘3류’이고, 차관 자리마저 뺏긴 교육부는 ‘4류’라는 게 관가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교육부 관계자는 “국정 역사교과서 제작을 결정할 당시 교육부 장관이던 황우여 전 부총리도 ‘보수 세력 결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대했지만 청와대에서 밀어붙이는 바람에 강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교육자치로 교육감 권한이 세진 것도 교육부의 현장 장악력이 떨어진 이유 중 하나로 거론된다. 교육감은 교원 인사권을 쥐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국 17명의 교육감 중 13명이 진보 성향”이라며 “국정교과서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려면 교육감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울산·대구·경북지역을 제외한 14곳(중립 성향으로 분류되는 대전교육감 포함)의 교육감이 국정 역사교과서 반대 성명을 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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