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사고 현실이라면…'판도라', 재난 영화의 존재 이유

입력 2016-11-30 08:55  

1986년 체르노빌과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재난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새 영화 '판도라'는 남의 나라 일로만 여기던 원전 재앙이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동하고 있는 원전은 총 23기. 인구당 원전 밀집도는 8260메가와트(MW)당 380만명으로 세계 1위이고, 상당 수 원전은 노후화한 상황이다. '판도라'의 경고를 영화 속 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 29일 서울 성동구 CGV왕십리에서 진행된 언론시사회를 통해 영화 '판도라'의 문이 열렸다.

'판도라'는 원전을 소재로 한 최초의 블록버스터로 긴장감 있는 스토리와 초대형 스케일로 개봉 전부터 이목을 집중시켰다.

영화는 2012년 살인 기생충을 소재로 한 '연가시'로 재난 영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박정우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다.

박 감독은 시나리오 집필 단계에서 사전 연구를 통해 많은 레퍼런스를 검토했다. 조사 끝에 그는 '원전은 100%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는 지점을 상정해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이야기의 틀은 '만약'에서 비롯한다"며 "우리나라에서 원전 사고가 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시뮬레이션하듯 스토리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영화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재난에 맞서는 평범한 사람들과 무능한 정부의 이야기를 대비시켜 현 시국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 칼날도 세웠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남길, 문정희, 정진영, 김대명, 김주현은 현 시국과 맞닿아 있는 영화라고 입을 모았다.

재난 현장을 지키는 발전소 소장 평섭 역의 정진영은 "온 국민이 허약한 사회 시스템과 부정부패에 분노하고 있다"며 "이 영화가 원전에 대해 신중하고 차분하게 생각할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남길은 원전 발전소에서 일하는 시골 마을 청년으로 재혁으로 분했다. 그는 사상 최악의 재난을 마주하게 된 후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원전으로 돌아간다.

그는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와 비슷해 피로감이 있을 수 있다는 걱정을 했다"며 "그러나 '판도라'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인간애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연기파 배우 김명민은 이 영화에 특별 출연했다. 원전 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뒤늦게 전달받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총리의 등쌀에 눌린 무능한 대통령 역이다.

김명민은 "별로 한 게 없다"며 "무능한 대통령을 어떻게 하면 무능하지 않게 연기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장에 가보지 않고 상황을 통제해야 해서 답답했다"며 "내가 실제 대통령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繭箚?말했다.

박 감독은 영화 흥행에 대한 질문에 "힘겨운 싸움 중"이라며 현 시국을 우회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4년을 준비했는데, 저쪽에서는 아줌마 둘이서 40년을 준비했더라"라며 "우리 제작비는 150억인데 저쪽은 몇천억원에 관중 동원력도 뛰어나다"고 꼬집었다.

원전 사고로 남편을 잃은 정혜 역의 문정희는 "촬영하기 전까지는 원전에 대한 어떤 정보도 자세히 찾아볼 수 없었다"며 "'판도라'를 통해 원전만이 유일한 에너지원이 아니라는 것과 원전의 위험성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영화 '판도라'는 다음달 7일 개봉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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