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금통위 의사록 보니
새 얼굴 4명 투입했지만 치열한 논쟁도 없고 7개월째 제 목소리 안내
변곡점에 선 한국 경제…'정책 시그널' 기능 못해
[ 김유미 기자 ] 시장이 혼돈에 빠졌지만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긴 침묵 중이다. 저성장과 금융 불안, 가계부채 등 이슈가 넘쳐나는데도 뜨거운 논쟁이나 시장 소통도 찾기 어렵다. 만장일치 속에 소신과 색깔을 숨겨온 지 7개월째다. 변곡점에 선 한국 경제가 미래를 대비하기엔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29일 한은 홈페이지에 공개된 금통위 의사록은 시장의 관심사였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한 직후인 지난 11일 회의분이다. 당시 금통위는 시장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며 금리를 연 1.25%에서 동결했다. 만장일치였다.
의사록엔 가계빚, 주택 공급과잉, 금융불안 우려 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 가운데 한 위원은 “경제 상황이 현재 전망보다 악화될 경우 통화정책 완화기조를 더 강화할 필요도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요하면 금리를 더 내리자는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가 모처럼 등장한 셈이었다. 지난 5월 의사록에도 이처럼 금리인하를 선호하는 목소리가 뒤늦게 드러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금통위는 지난 5월부터 7개월째 만장일치였다. 심지어 금리인하를 결정하던 6월 전후에도 금통위원들은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 공식적으로 자기 이름을 걸고 이견을 내본 사람은 현 일곱 명 가운데 한 명도 없다.
지난 4월21일 고승범 신인석 이일형 조동철 위원이 금통위에 새로 합류한 뒤 단합된 목소리가 더 강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모두 국책연구소나 정부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던 전문가들이라 임기 초반엔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것’이란 기대가 컸다. 이코노미스트로서 시장과 적극 소통할 것이란 예측도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한 위원은 “각자 전문성이 있다 보니 소신은 있다”며 “다만 서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다 보니 생각의 유연성이 높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단합된 목소리가 시장의 혼란을 줄인다는 긍정론도 없지 않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다. 한 시장 전문가는 “각각의 정책 스펙트럼이 아직 보이지 않아 시장에서 참고할 신호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전임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하성근 전 위원은 임기를 마치기 직전인 지난 4월까지도 금리 인하를 주장했다. 대표적인 비둘기파인 그가 소수의견을 내면 실제 몇 달 뒤에 금리 인하가 이뤄지곤 했다. 시장에서 중요하게 삼는 ‘정책 시그널(신호)’이었다. ‘매파(긴축 선호)’였던 문우식 전 위원은 가계빚 문제와 저금리 부작용을 가장 먼저 경고해왔다.
위원들이 다양한 목소리로 치열하게 논쟁해야만 앞날에 대비할 수 있다는 쓴소리가 여기서 나온다. 게다가 지금은 경제가 변곡점에 섰다는 지적이 많다. 민간 연구소와 정부의 경기 시각이 엇갈리고, 금리와 물가의 변동폭은 부쩍 커졌다.
일부에선 갈등이나 이견이 불거지지 않는 배경으로 위원들 간 친분과 비슷한 경력을 꼽는다. 신인석 조동철 함준호 위원은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근무한 경력이 같다. 이견을 갈등으로 보는 국내 분위기가 금통위원을 소극적으로 만든다는 지적도 있다.
한은 관계자는 “금통위원들의 전문성을 감안해 세미나 등 대외활동을 촉진하고 있다”며 “좀 더 지켜봐달라”고 말했다. 금통위의 금리 결정 횟수가 연 12회에서 8회로 내년부터 줄어드는 만큼 보완조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개별 위원들의 정책 전망을 점도표로 보여주고 있다.
김유미 경제부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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