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위 측 "차이 총통 전화 받아"…중국, 공식 확인 후 미국에 엄중 항의
통화 전 키신저 만난 트럼프 "축하 전화도 못받나" 발끈
미국 '중국 압박 카드'로 활용 가능성…갈등 고조땐 대북제재 깨질수도
[ 베이징=김동윤/워싱턴=박수진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지난 2일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대통령)과 직접 전화통화를 한 배경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자가 대만 정상과 통화한 것은 1979년 양국 간 수교 단절 이후 3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협상의 달인’ 트럼프 당선자가 중국 대외정책 근간인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건드리며 중국에 대한 강경노선을 예고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아웃사이더’ 트럼프의 우발적인 외교 해프닝이라는 시각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 “이번 통화로 미·중 관계가 경색되면 양국 간 협력이 필요한 북한 핵개발 제재 등이 차질을 빚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측, 통화 사실 즉각 확인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 인터넷판을 통해 두 사람 간 통화 사실을 처음 보도했다. 트럼프 당선자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즉각 “두 사람이 이날 전화통화하고 긴밀한 경제·정치·안보 관계를 논의했다”고 확인했다.
트럼프 자신도 트위터에 “대만 총통이 오늘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대선 승리를 축하했다”고 밝혔다. 대만 총통부는 “두 사람이 경기부양 촉진과 국방 강화로 두 나라 국민이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설명했다.
공식 확인 뒤 미국 언론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대(對)아시아 외교의 파탄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기존 대중(對中) 정책과의 결별을 의미하는 중대한 조치”라고 해석했다. 왕둥 베이징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번 통화는 중국의 잠을 깨우는 통화였다”며 “향후 6개월 또는 1년간 험난한 미·중 관계에 대비해야 한다”고 전망했다.
중국은 자국의 핵심 이익으로 꼽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일 것을 수교를 원하는 국가에 요구해왔다. ‘대만은 정식 국가가 아니니 (중국의 일부이니) 국가 간 외교관계를 단절하라’는 뜻이다.
미국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했다. 이어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대만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치밀한 계산 아래 의도된 도발”
미·중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트럼프 당선자의 이번 통화가 치밀한 계산에서 나온 의도적 도발일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 주변의 외교안보 참모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세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대만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존 볼턴 전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연초 WSJ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미국과 대만 간 외교관계를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차이 총통과 통화한 당일 인수위가 꾸려진 뉴욕 트럼프타워를 볼턴이 방문했다고 전했다. 볼턴 전 대사가 모종의 역할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中 “대만 측의 작은 행동” 의미 축소
이번 전화통화가 트럼프 당선자의 즉흥적 행동이었을 뿐이라는 시각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있다. 그는 통화가 심대한 외교문제를 일으켰다는 반응이 나오자 트위터에 “미국은 대만에 수십억달러어치의 무기를 팔고 있다”며 “당선 축하전화도 받지 말라는 것은 참 흥미롭다”고 썼다.
차이 총통과 통화하기 직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중국 지도부를 미리 만난 것 역시 이 같은 관측을 뒷받침한다. 트럼프 당선자와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해 수차례 상의한 것으로 알려진 키신저는 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일부 미국 언론은 키신저가 중국에 화해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대만 측이 일으킨 작은 행동으로 국제사회에 이미 형성된 ‘하나의 중국’이란 틀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중국 외교부는 그러면서도 홈페이지에 게재한 대변인 논평을 통해 “이번 전화통화와 관련해 미국에 엄중하게 항의한다”고 밝혔다.
◆대만과 관계 개선 시 정세 급변
트럼프 당선자가 내년 1월20일 취임 이후 대만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면 미·중 양국은 통상 분야에 이어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된다.
WSJ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공조가 가장 먼저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과 중국 등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은 지난달 30일 북한의 석탄·광물 수출길을 틀어막는 대북제재결의안 2321호를 채택했다.
중국의 북한 전문가인 왕솅 지린대 교수는 “미국이 중국의 핵심 이익을 건드리면서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협조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이징=김동윤/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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