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26일 새벽 체르노빌 발전소 소속 소방관 바실리 이그나텐코와 블라디미르 프라빅은 원전이 폭발했다는 믿기 힘든 소식을 접했다. 두 사람을 포함한 소방관들이 폭발 현장에 달려갔을 때 원자로는 뜨거운 화염과 가스로 아수라장이 된 뒤였다.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인 방사능 누출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두 사람은 사고 초기 투입된 29명의 동료들과 함께 2주 만에 급성방사선증후군(ARS)으로 숨을 거뒀다. 훗날 우크라이나 정부는 초동 대처에 나선 이들의 희생정신을 기려 영웅 훈장을 수여했다. 그 후로도 61만명의 군인과 소방관, 노동자들이 사고 복구에 나섰지만 지금도 원전 4호기에선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로 스며들거나 공기 중으로 나오고 있다. 비공식 집계로만 4000~9000명이 체르노빌 사고의 영향으로 숨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최악의 원전사고가 난 지 30년이 지나 옛 소련 체르노빌 원전 4호기를 덮는 거대한 강철 방호벽이 지난달 29일 완공됐다. 발전소 측은 사고 직후 계속되는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원자로를 거대한 시멘트 석관으로 덮는 공사를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시멘트가 노후화하면서 방사성 물질 유출이 우려되자 2001년부터 100년 이상 버틸 수 있는 추가 방호벽 제작에 나섰다. 한국과 이스라엘, 일본 등 세계 40개국이 21억달러를 지원했다.
이날 완공된 새 방호벽은 폭 257.5m, 길이 150m, 높이 105m로 흡사 거대한 항공기 격납고를 연상시킨다. 미국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을 충분히 덮고도 남는 크기다. 여기엔 프랑스 파리 에펠탑보다 많은 3만6000t에 이르는 강철이 사용됐다. 지난달 14일 원자로에서 372m 떨어진 곳에서 조립을 끝낸 방호벽은 40시간에 걸쳐 레일을 따라 천천히 옮겨졌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방호벽 안에서 사고가 난 4호기를 완전 해체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현재 사고가 난 원전 4호기 원자로에는 80% 핵연료가 남아 있고 암을 유발하는 요오드 131, 세슘 137이 공기 중으로 유출되고 있다. 이 격납시설은 내부와 바깥 사이 공기를 완벽히 차단하도록 설계됐다.
체르노빌 원전 주변 오염 지역은 2600㎢에 이른다. 룩셈부르크에 해당하는 넓이다. 영국 포츠머스대 연구진은 체르노빌 사고 전보다 야생동물 숫자가 웃도는 등 생태계가 회복되고 있다는 결과를 내놨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 지역에서 사람이 살려면 3000년은 넘게 걸릴 것이란 분석도 내놓았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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