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한신 기자 ]
“특검에서 2014년 ‘정윤회 문건 수사’도 다시 들여다봐야 한다. 필요하면 김수남 검찰총장도 조사하겠다.”
최순실(60·구속기소) 국정 개입 의혹 전반을 수사하게 된 박영수 특별검사(64·사법연수원 10기)의 말이다. 2014년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 수사를 지휘한 김 총장이 특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 사건은 최씨의 전남편인 정씨가 정부 인사 등 국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담은 문건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촉발됐다. 하지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시중의 근거 없는 풍설을 모은 ‘찌라시’”라며 ‘수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 검찰은 문건 내용보다 유출 경위를 중점적으로 수사했다.
당시 검찰이 입수한 정보에는 최씨의 국정 농단 사례도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의 압력으로 수사팀이 사건을 축소했다는 의혹도 일었다. “당시 부실하게 수사한 탓에 사태가 지금에 이르렀다”는 책임론이 제기된다.
검찰 측은 “당시 문건에는 최순실 사생활 내용만 일부 담겼을 뿐 국정 개입과 관련된 부분은 전혀 없었다”며 “검찰은 당시 수사 대상에 맞게 원칙을 지켜 수사한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김 총장이 특검 조사를 받을 경우 대대로 내려온 검찰총장 수난사가 이번에도 이어질지 관심을 모은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총장이 된 1988년부터 검찰총장 임기제(2년)가 시작됐는데, 이후 임기를 마친 이는 김 전 실장(22대), 정구영(23대)·김도언(26대)·박순용(29대)·송광수(33대)·정상명(35대)·김진태(40대) 전 총장 등 일곱 명뿐이다.
가장 최근에 중도 퇴임한 사람은 채동욱 전 총장(39대)이다. 혼외 자녀가 있다는 의혹이 일면서 취임 7개월 만에 사임했다. 갑자기 혼외자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채 전 총장이 국가정보원 정치 개입 의혹 수사를 원칙대로 처리해 정권에 밉보였다는 얘기가 나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 자리에서 물러난 이들도 둘 있다. 임채진 전 총장(36대)은 수사 중이던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김각영 전 총장(32대)은 노 전 대통령이 ‘검사와의 대화’에서 검찰 수뇌부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발언하자 불신임으로 판단해 사임했다.
중도 사임의 또 다른 ‘단골 이유’는 검찰개혁에 대한 반발이다. 김준규(37대)·한상대(38대) 전 총장이 그랬다. 김 전 총장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담은 형사소송법 개정에 반대하며 옷을 벗었다. 검찰 내부에서 “총장이 책임져야 한다”는 기류가 거셌다. 한 전 총장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등 검찰개혁에 대해 내부 반발이 일자 버티지 못하고 물러났다.
정권과의 불화로 사임한 경우도 있다. 김종빈 전 총장(34대)은 2005년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지시하자 사표를 냈다. 김기수 전 총장(27대)은 한보 비리 사건 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에 대한 구속과 맞물려 사임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