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엔 '자치'요구, 학교엔 '내 말 따르라'는 교육감들

입력 2016-12-06 18:34  

무너지는 교육컨트롤타워 (2) 교육당국 충돌에 '새우등' 터지는 학교

"국정교과서 채택 미뤄라"
조희연 서울교육감 권고에 교총·교장들 "월권" 반발

교육감 진보냐 보수냐 따라 정책 널뛰기로 학교현장 혼란
"장기계획 수립은 꿈도 못꿔"



[ 박동휘/임기훈 기자 ] “교육자치의 취지에 모순된다.” 국정 역사교과서 채택을 미루라는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권고’에 서울의 한 중학교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교육부엔 ‘자치’를 요구해온 교육청이 정작 학교장에게 특정 정책을 강요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란 얘기가 나온다. 교육부와 일부 교육청 간 갈등이 학교 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지는 교육자치의 민낯이 또다시 드러났다는 게 일선 교사들의 지적이다.

또 교육당국 간 갈등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6일 “지역 교육의 수장인 교육감이 학교장을 불러 모아 교육과정 편성권과 학교 자율성을 침해하는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즉각 중단을 촉구했다. 교총은 지난달 28일 국정 역사교과서 현장검토본이 공개되자 국정화 반대 성명을 내며 진보 성향 교육감들과 보조를 맞추는 듯했다.

하지만 조 교육감이 지난달 30일 내년 중학교 1학년에 역사과목을 편성한 17개교 교장을 소집해 국정 역사교과서를 사용하지 말라고 하자 즉각 반박에 나섰다. 서울교육청은 고교 1학년에 한국사를 편성한 201개 학교도 압박하고 있다.

일선 교장들도 반발하고 있다. M고 교장은 “공립고 대부분이 교과서를 주문한 상태”라며 “1학년에 배정된 한국사를 2학년으로 미루면 다른 과목을 1학년으로 내려야 하기 때문에 전체 교육과정을 다시 짜야 한다”고 털어놨다.

자율형사립고인 J고 교장은 “교육감 생각대로라면 일선 학교에선 역사 교사들이 1년간 쉬어야 한다”며 “사립고의 인력수급 문제에까지 교육청이 개입하려 하는 것은 직권남용이고 월권”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교육자치를 존중한다는 조 교육감의 지론에도 어긋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육부와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강대강’으로 맞서고 있다.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0조 제6호 ‘교육과정의 운영에 관한 사항’에 근거해 “교육감이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을 학교장과 협의하는 것은 적법한 절차”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는 위법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 시정명령 등을 내릴 태세다. 법정 공방이 길어지면 학교만 피해를 볼 가능성이 크다.

정치색 짙은 지방교육자치

교육 현장에선 자립형사립고, 누리과정 예산, 국정 역사교과서 등 정치적 민감도가 높은 이슈가 끊이지 않으면서 교육자치의 근본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각종 법률의 모법인 헌법 31조4항은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하고 있다.

J고 교장은 “교육감을 선거로 뽑는 제도를 도입한 2007년 이후 서울만 해도 진보에서 보수, 다시 진보로 교육감이 바뀌었다”며 “학교장으로선 변수가 너무 많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는 게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서울교육청의 ‘자사고 흔들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오세목 서울자사고협의회장은 “자사고는 정부 보조를 받지 않기 때문에 자율성을 보장받도록 돼 있는데도 서울교육청이 입시요강을 선추첨, 후지원으로 바꾸는 등 학생 선발권에 개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누리과정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어린이집 지원에 필요한 금액의 45%가량을 예산으로 지원하기로 했지만 ‘3년 한시’여서 미봉책이란 지적이 많다. 동대문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은 “어린이집 예산 편성을 놓고 교육부와 교육청이 갈등을 빚을 때마다 불안해하는 건 엄마들”이라며 “아이를 볼모로 한 정치적인 싸움은 그만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동휘/임기훈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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