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벤처 데스밸리

입력 2016-12-07 17:23   수정 2016-12-08 05:24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벤처의 길은 험난하다. 아이디어 하나로 창업하지만 모험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엇보다 돈이 문제다. 그럴듯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시제품을 만들려면 돈이 든다. 이제 싹에 불과한 아이디어에 큰돈을 대주는 엔젤투자자는 거의 없다. 그나마 시제품이 나올 때쯤이면 자금이 다 마른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개발을 끝내고 사업화를 추진하는 단계에서는 훨씬 많은 돈이 든다. 특허를 등록해야 하고 금형을 만들어 양산체제도 구축해야 한다. 대부분 벤처들이 여기서 도중 하차한다. 창업 3~7년 정도 기업들이 맞는 이 기간을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고 부른다. 미국 캘리포니아 중부 모하비 사막의 북쪽에 있는 깊고 건조한 이 분지는 섭씨 56.7도까지 오르는 척박한 땅이다. 이 계곡을 넘지 못하고 97% 정도의 벤처가 문을 닫는다.

운좋게 ‘죽음의 계곡’을 넘어 사업화에 성공해도 또 기다리는 게 있다. ‘다윈의 바다’다. 호주 북부에 있는 해안가 지명을 따온 명칭인데, 이때부터 ‘적자생존’의 대경쟁을 이겨내야 신산업 창출에 성공하게 된다. 여기에도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홍보도 하고 광고 마케팅도 하고 영업조직도 갖춰야 한다. 이 바다에서 벤처들이 대부분 사망한다.

벤처 창업자 본인은 억울할 수밖에 없다. 누군가 계약만 해주면 ‘대박’이 날 텐데, 공장 돌릴 자금이 없고, 광고할 돈이 없어 성공 문턱에서 주저앉게 되니 말이다. 창업자가 발명가인 경우를 보면 그럴듯한 시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기본 설비를 갖추는 데 20억원 가까운 돈을 날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투자받은 돈도 있지만 대개 집 팔고 일가친척까지 보증 세워 사업을 한 경우가 많아 자신은 한 푼 만져보지도 못한 채 거금을 날리게 된다. 그야말로 패가망신이다.

중소기업청이 엊그제 ‘데스밸리’ 단계에 있는 기업들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이 분야 예산을 두 배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엔젤투자가 활성화되지 못한 우리 창업풍토에서는 그나마 이런 제도라도 필요하다. 그러나 벤처가 정부 지원금을 따먹으려고 시작한 게 아니고 보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할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가볍게 창업하는 일이다. 다행히 3D프린터 등을 활용해 시제품을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을 비롯해 창업환경은 아주 좋아졌다. 잊지 말 것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이디어에 매몰되면 ‘죽음의 계곡’을 건너기 어렵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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