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값 못한 10대 운용사 간판 주식형펀드
한미약품 부실공시·중국발 '혐한' 악재에 치이고
삼성전자 홀로 급등하며 '간판 매니저'들 속수무책
환매 급증→보유종목 매도→수익률 하락 '악순환'
[ 김우섭 기자 ] 2016년은 국내 스타 펀드매니저에게 ‘굴욕의 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알파수익(초과수익)’을 내며 몸값을 높인 10대 자산운용사의 대표 매니저들이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기 때문이다. 올해 내내 수익률 부진이 이어지면서 이탈한 고객 자금만 1조원이 넘는다. 대표 펀드를 운용하는 한 펀드매니저는 “환매 자금을 돌려주기 위해 보유 종목을 팔 때마다 수익률이 추가 하락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며 “수익률 반전의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곤두박질친 수익률
지난 5년간 이어진 박스권 장세에서도 국내 10대 운용사(자산 기준)의 대표 펀드들은 꾸준한 수익률을 냈다. 한 해 반짝 수익률을 낸 뒤 수익률 하락으로 고객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펀드들과 달랐다.
2007년 9월 설정된 삼성중소형FOCUS는 고성장 중소형주를 담아 2012년 19.92%, 2013년 5.32%, 2014년 8.11%, 지난해 19.28%를 기록한 ‘모범생 펀드’였다. 설정액 1조4000억원의 대형 펀드인 ‘메리츠코리아’ 역시 2014년 14.84%, 2015년 21.96%를 기록했다. 2014년과 지난해의 코스피 상승률 -4.76%와 2.39%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러나 올해엔 이들 펀드의 수익률이 더 떨어졌다. 펀드매니저 능력이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K200인덱스(코스피200지수 포트폴리오를 복제해 투자)’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4.94%)보다 무려 15.36%포인트 낮다. 삼성전자 등 극히 일부의 대형주만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장세가 지속되는 데다 펀더멘털(실적 대비 주가)이 좋은 종목들의 부진이 겹쳐서다. 삼성중소형FOCUS와 메리츠코리아 펀드는 올해 각각 -19.09%와 -26.14%의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가장 좋은 수익률을 기록한 펀드인 신영밸류고배당이 -3.08%에 그칠 정도다.
충성심 높은 고객들도 속속 빠져나가고 있다. 10개 펀드 설정액(10조1582억원)의 10%가 넘는 1조1860억원(11.67%)의 자금이 이탈했다. 개별 운용사로 보면 한국밸류10년투자(3011억원)와 메리츠코리아(2730억원)에서 타격이 컸다. 자금이 추가로 들어온 펀드는 신영밸류고배당(106억원)과 NH-Amundi Allset성장중소형(153억원) 두 개에 불과했다.
◆“뭘 담아야 하나” 한숨
간판 펀드 부진의 가장 큰 요인은 펀더멘털과 상관없이 출렁이는 시장상황 때문이다. 특히 지루한 박스권 장세에서 정치 테마주나 일부 작전주에 투자자금이 몰리는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예컨대 지난 9월12일엔 ‘반기문 테마주’로 분류되는 보성파워텍 등 7개 종목의 거래 대금이 전체 코스닥 거래 대금의 22%를 차지하는 등 매거래일 대선 테마주의 거래 비중이 20% 안팎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7개 종목의 시가총액 합계는 900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등 돌발 악재가 이어진 것도 한 요인이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는 “기업 실적보다는 수급에 따라 주가가 출렁이는 경우가 많았다”며 “투자자로선 매우 답답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비중이 높지 않은 것도 수익률 부진으로 나타났다.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의 20% 안팎(우선주 포함)을 차지하는 삼성전자는 올 들어 40.63% 올랐다. 시가총액 비중만큼 삼성전자를 펀드에 편입했다면 수익을 올렸겠지만 10개 펀드의 삼성전자 비중은 7.74%에 불과했다.
삼성전자를 한 주도 담지 않은 펀드도 3개(메리츠코리아 KB밸류포커스 한국밸류10년투자)에 달했다. 중소형주에 투자한 기관과 외국인이 자금을 빼 삼성전자를 담는 경우가 늘면서 수익률이 더 떨어진 펀드도 많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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