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개설학과는 5곳뿐…무의미한 응시
[ 김봉구 기자 ]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도 제2외국어로 아랍어를 택한 수험생이 크게 늘었다. 10명 중 7명꼴이다. 조금만 공부해도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정작 국내 대학에 개설된 아랍어 관련 학과는 통틀어 5곳뿐이어서 괴리가 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지난 7일 공개한 2017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 자료를 보면 제2외국어·한문 영역의 9개 선택과목 가운데 ‘아랍어I’ 응시자가 71.1%에 달했다. 쏠림 현상이 극심하다. 러시아어I 응시자(1.1%)가 가장 적었으며 전통적인 제2외국어 과목인 독일어I과 프랑스어I 응시자 비율도 1%대(각 1.7%)에 불과했다.
아랍어 응시자는 전년도 수능(52.8%)에 비해서도 크게 늘어났다. 이처럼 수험생들이 아랍어에 몰리는 이유는 순전히 점수 때문이다.
수험생들에게 아랍어는 ‘로또’로 통한다. “찍어도 5등급”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돈다. 때문에 ‘일단 아랍어에 응시해 성적이 잘 나오면 탐구 영역 성적을 대체하면 된다’는 식의 노림수가 나온 것이다.
오종운 종로학원하늘교육 평가이사는 “실제로 아랍어 모든 문항에 2번 보기만 찍어도 원점수 10점, 5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고 귀띔했다. 다른 제2외국어 과목에서 똑같이 10점을 받을 경우 한문은 8등급, 독일어·프랑스어·스페인어·중국어·일본어는 7등급, 베트남어는 6등급이다.
제2외국어 과목 중 아랍어만 표준점수 최고점인 100점으로 66~79점에 형성된 다른 과목들과 뚜렷한 차이를 보였다. 1등급 구분점수(표준점수 기준) 역시 아랍어가 75점으로 가장 높았다. 아랍어와 베트남어(72점), 러시아어(71점)를 제외한 제2외국어 과목은 63~67점에 그쳤다.
아랍어는 현행 선택형 수능이 도입된 2005학년도 시험부터 제2외국어 과목에 추가됐다. 낯선 언어인 탓에 첫해 응시자는 531명뿐이었다. 하지만 이후 ‘지원자도 적은데 조금만 공부해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아랍어 응시자 수는 매년 폭증했다.
정작 아랍어를 가르치는 고교나 관련 학과가 개설된 대학은 드물다. 대학정보 공시사이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개설된 아랍어 관련 학과는 외국어대 중심으로 모두 5곳. 반면 응시생 비율이 1%대인 독일어나 프랑스어 관련 학과는 전국 대학에 걸쳐 40~50개씩 개설돼 있다.
수능을 출제하는 평가원 측도 이러한 문제점은 인식하고 있다. 이용상 수능분석실장은 전날 진행된 관련 브리핑에서 “지난해부터 ‘아랍어 로또’나 ‘찍어도 5등급’ 등의 보도가 있었고 학생들도 이왕이면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자는 심리가 많이 작용해 아랍어 쏠림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수험생들의 아랍어 응시를 강제로 막는다든지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이 문제를) 수능에서 해결하기보다는 교수·학습 측면에서 중장기적으로 연구해 해결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반대 입장도 있다. 원론적 수준 언급을 넘어 수능 출제방식에 직접 개입해 문제를 풀자는 것이다. 오종운 이사는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아랍어 ‘묻지마 선택’은 계속될 것”이라면서 “제2외국어의 기형적 쏠림 현상을 피하고 올바른 학습이 이뤄지려면 영어처럼 제2외국어에도 절대평가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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