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청문회에 주요기업 총수들이 증인대에 섰다. 기업과 총수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주관적 감상평을 써본다. 다만 이 글에서는 사건의 내용에 대한 평가는 생략한다. 예를 들어 삼성이 최순실을 지원하고, 미르재단 등에 대한 출자한 대가를 받았는지 등이 그에 속한다.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전략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전략적이라는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삼성의 스타일이 묻어 있었다. 그가 가장 많이 한 말은 “송구합니다. 앞으로 잘하겠습니다” 등이었다. 불쌍하고, 약간을 어눌하게 보이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이는 삼성에 대해 국민들이 갖고 있는 무언가 얄미워 보이는 이미지에 기름을 부어서는 안된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내부적으로는 이 부분에 대해서 만큼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연습의 힘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삼성이 노린 숨어 있는 전략도 있었다. 삼성은 이번 청문회를 통해 이 부회장이 삼성의 리더라는 것을 공인받는 효과가 있었다. 과거 이 부회장이 국민들 앞에 선 것은 메르스 사태때 단 한번이었다. 그때는 기자회견문만 읽고 끝났다. 청문회를 통해 국민들은 하루 종일 그를 봤다. 평가야 어쨌든 후계자 이재용이 아닌 삼성의 오너 이재용으로 인식되는 효과가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였다.
또다른 전략은 이 부회장의 구상이다. 그는 청문회를 통해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미래전략실을 설명하며 그는 “창업자인 선대회장이 만드신”이란 표현을 썼다. 미래전략실을 구시대적인 것으로 낙인찍은 효과가 있었다는 평가다. 이건희 회장도 1987년 회장이 됐지만 이병철 창업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는데 쉽지 않았다는 것을 고백한 적이 있다. 이 부회장은 공개적인 발표를 통해 과거의 유산을 정리하고, 친정체제를 구축하려 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너무 많은 것을 모른다고 해 과연 그가 삼성이 이끌 능력이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준 것은 손실이라고 할수 있다. 물론 법정에서 있을지 모르는 공방의 싹을 차단하고자 하고,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연출이었지만 말이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이미지
정몽구 회장의 하이라이트 영상에는 ‘의문의 1패’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게 횡성수설 했다는 지적을 반영한 것 같다. 실제로 그랬다. 미르재단 출연 등에 대한 질문에 “여태까지 우리가 기금내에서 필요한 인제 나이 많이든 사람이나 경제적으로 하지 않는 그거는 자주 기금을 하고 그럽니다”라고 답했다. 기금이 필요한 곳에 선의로 자금을 제공했다는 얘기였지만 알아듣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그는 청문회의 분위기를 처음으로 풀어주는 역할을 했다. 안민석 의원이 촛불집회 가본 사람 손을 들라고 하자,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만 손들었다. 안 의원은 "당신은 재벌 아니잖아"라고 면박을 줬다. 순간 정 회장은 큰 소리로 웃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동네아저씨의 웃음이었다. 이를 본 안 의원도 웃고 말았다. 그의 어눌한 말투, 순박한 웃음 등은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혐의를 부인했지만 그의 표정은 왠지 그 말이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는 느낌을 주기 충분했다.
그의 말이 어눌한 것은 업계에서 유명하다. 과거 취재할 때도 기자회견장에서 그의 말은 알아듣기 힘들었다. 공항에서 들어와 마주친 적이 있다. 그때도 그가 한 말을 기사로 쓰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도 그는 뚝심 하나로 현대자동차를 글로벌 플레이어로 만들었다. 신기한 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이미지는 청문회까지 이어졌다.
◆신동빈 롯데 회장의 반전
신동빈 롯데 회장도 눈길을 끌었다. 청문회 도중 안민석 의원이 전경련 해체에 반대하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주문한 순간이었다. 다들 머뭇거렸지만 신 회장의 손은 주저 없이 올라갔다. 이유는 그가 일본 전경련인 게이단렌 모델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롯데 주변의 얘기다. 게이단렌은 전경련과 다르다. 1946년 2차대전 패전국 일본의 경제를 재건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일본 경제 재건과정에서 자민당 정권의 파트너 역할을 했다. 경총에 해당하는 니케이렌도 통합했다. 국가적 아젠다를 개발하고 국민들의 지지도 얻었다. 2009년부터는 정치자금 기부를 중단했다. 신 회장의 자신감 있는 거수는 전경련이 게이단렌 같은 역할을 하길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었던 것 같다. 그는 소신발언도 했다.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하라는 질책에 “규제를 풀어주면 열심히 투자하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롯데마트 등은 출점규제 등으로 신규 점포를 내기 쉽지 않은 처지다.
신 회장의 청문회를 보며 기대치 게임이란 말을 떠올렸다. 신동빈은 한국말을 잘 못한다는 게 핸디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제 사람들의 기대치도 낮았다. 기대하지 않았던 소신발언과 솔직함을 보여준 것은 인상적이었다. 한 의원이 “압수수색 정보가 없었던 것은 그만큼 정보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고 묻자, 신 회장은 “우리 정보조직은 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이때도 웃음이 터졌다. 일각에서는 한국말을 잘 못 알아 들은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하지만 신 회장은 청문회를 앞두고 말 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집중했다는 후문이다. 그는 알아듣고 솔직히 인정한 것이다. 실제로 롯데그룹 정보조직은 크지 않았다.
이번 청문회에서 질문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집중되면서 면세점 문제가 크게 다뤄지지 않은 것도 신 회장에게는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답변 도중 신 회장이 몇달전 스스로 생을 마감한 이인원 전 부회장에게 책임의 일부를 넘기는 듯 한 인상을 준 것은 아쉬웠다는 얘기도 나온다.
◆손경식 CJ회장의 당당함
손경식 CJ 회장은 고령임에도 시종일관 명쾌하게 답했다. 질문의 핵심은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 이미경 부회장에게 회사를 떠나달라는 얘기를 한 점이다.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조수석은 (박근혜)대통령 말씀이라고 전했다”고 했다. 자신의 생각도 밝혔다. 대통령이 기업인을 쫓아낼 권한이 있느냐는 질문에, 손 회장은 “저는 대통령 권한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이런 경우가 과거에도 있었냐는 질문에는 “군부 정권때나 있었던 일”이라고 답했다. CJ가 당한 일이 군사정권때나 있었던 일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 경위를 말해야 할 당사자가 누군지도 적시했다. 그는 “왜 그렇게 한 것인지 이유는 알수 없다. 조수석이 답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손 회장은 이 자리에서 차은택이 CJ에 있는 문화융성 담당업무를 하는 조직의 책임자 자리를 요구했다는 것도 공개했다.
그가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CJ가 피해자였다는 확신에서 나온 듯 하다. 피해자의 당당함이었던 셈이다.
◆구본무 LG회장의 소신
구본무 회장은 내공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많다. 이번 청문회에서 구 회장은 애초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질의도 신통치 않았다. 왜 부당한 압력에 굴복해 돈을 내냐는 추궁이 있었다. 구 회장은 “재단에 출연한 것은 나중에 알았다. 문화와 스포츠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알았다. 최순실이 하는 것은 몰랐다”고 답했다. 명분 때문에 했다는 얘기였다. 의원은 계속 추궁했다. “명분만 있으면 앞으로도 정부가 내라면 낼 거냐. 그럴 바에는 준조세 안 걷고 법인세 올리는 것은 어떻냐”고 물었다. 구 회장은 “법인세 올리는 것은 찬성 못하겠다”고 버텼다. 의원이 계속 준조세를 계속 내겠다는 말이냐고 다그치자 구 회장은 “국회에서 입법해서 막아달라”고 했다. 추궁은 끝이었다. 평소 외부에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구 회장, 마음을 비운 듯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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