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해외 기업들이 달러 강세로 촉발된 환율 변동성에 고심하고 있다. 실적을 원화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환율에 따라 매출과 영업이익이 부풀어지거나 축소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적 공시에 부담이 가중되는 가운데 원화만 표기하는 잠정실적에도 외화 표기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해 10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중국 골든센츄리는 3분기 잠정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12.4% 증가한 1억3700만 위안, 영업이익은 22.6% 늘어난 3800만 위안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공시 규정에 따라 골든센츄리는 이를 원화로 바꿔 표시했는데 원화 기준 매출액은 230억2900만원, 영업익은 64억1300만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2.4%, 11.7% 증가에 그쳤다. 벌어들인 수익은 같지만 원화로 환산하는 과정에서 위안화 표기 대비 매출액·영업익 증가율이 모두 10%p 가량 줄었다.
골든센츄리가 환율 차이로 실을 봤다면 SBI액시즈는 득을 봤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일본 기업 SBI액시즈는 지난달 14일 반기보고서를 공시했다. 엔화 기준 SBI액시즈(3월 결산법인)의 2분기 매출액은 19억8300만 엔, 영업이익은 1억8300만 엔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각각 12.0%, 23.9% 증가했다.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매출액 217억2000만원, 영업익 20억800만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각각 28.3%, 41.9% 늘어난다. 환율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실적이 축소되거나 확대돼 전달되는 것.
해외 기업은 분기보고서, 사업보고서의 실적을 원화와 본국통화(외화)로 각각 표시한다. 잠정실적 보고서는 원화로만 표기하는데 회사의 필요에 따라 외화 기준 실적을 본문이 아닌 첨부사항에 따로 기재한다.
자율적으로 진행되는 잠정실적 공시는 해외 기업들이 국내 투자자들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골든센츄리와 크리스탈신소재 등 다수 기업들이 잠정실적을 공시했다. 하지만 널뛰는 환율에 이 같은 노력이 도리어 화살로 돌아오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가 짙어지고 있다. 실적을 원화 표기에 의존해야 하는 탓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해외 기업들이 주주 친화정책의 일환으로 잠정실적을 공시하고 있지만 실적이 줄어드는 것처럼 비춰져 곤란을 겪고 있다"며 "환 변동성이 높을 때는 잠정 분기실적과 한해 결산실적 사이에 괴리율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자산, 부채 등을 나타내는 재무상태표에는 각 회계연도의 기말 환율이 적용된다. 매출액과 영업이익 등을 표시하는 손익계산서는 각 회계연도의 평균환율이 적용되는데, 기간 내의 일평균 환율을 더해 거래일로 나누는 것이다. 만약 분기 내 거래일이 60일이라면 일평균 값 60개를 합한 후 60으로 나눈다. 분기 마다 적용되는 환율과 한해 결산 보고서의 환율 값이 다르기 때문에 환 변동 폭이 확대되면 실적의 괴리율이 커진다.
4분기에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부각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달 23일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 인덱스는 장중 101.91까지 치솟아 13년 8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고, 달러화에 직격탄을 맞은 위안화는 이튿날 8년5개월 만에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엔화도 약세 흐름을 지속하고 있다.
자율 공시인 잠정실적에도 외화 표시를 의무화 하자는 주장이 제기된다. 업계 관계자는 "첨부사항에 외화 기준 실적을 올릴 수 있지만 이 부분까지 점검하는 투자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잠정실적 본문에 외화 표시를 의무화한다면 해외 기업 실적에 대한 투자자들의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고 조언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해외기업일지라도 원화로 실적을 표기하는 게 투자자의 혼선을 줄일 수 있다"며 "잠정실적 공시에 원화와 외화를 병기하도록 규정을 변경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김은지 한경닷컴 기자 eunin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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