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이슈 찬반토론] 교수·학자들의 정치 참여는 바람직할까

입력 2016-12-09 17:10  

○ 찬성 “전문 연구성과의 현실 적용은 국가 발전에도 도움된다”
○ 반대 “연구·강의는 소홀히 하고 권력에만 기웃대는 건 문제”



‘최순실 게이트’에 교수 출신 고위 공직자가 대거 연루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대학 연구실을 박차고 나온 많은 학자가 정치권을 기웃거리면서 ‘폴리페서’(polifessor, politics+professor)에 대한 비판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평생을 연구한 학문적 전문성은 살리지 못한 채 정치권력의 심부름꾼 내지는 부역자로 전락한 권력 해바라기형 인사들에 대한 질타다. 물론 연구실의 이론을 행정과 그밖의 공공섹터에 잘 결부시켜 걸출한 성과를 낸 학자도 적지 않다. 과거나 지금이나 장관 가운데 개혁을 이뤄낸 교수나 연구기관 출신도 상당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를 유랑 중인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중앙대)을 비롯해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성균관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한양대), 김상률 전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숙명여대) 등은 정치권에 발을 잘못 들였다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그래도 폴리페서는 줄어들지 않는다. 유력한 대선 후보들 주변에 지금도 넘쳐나는 교수들이 반증이다. 교수·학자의 정치 참여를 어떻게 볼 것인가.

○ 찬성

대학 교수나 전문 연구기관 연구원이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한국에서만 유별난 현상도 아니다. 강의실과 연구소에서 갈고닦은 연구 성과와 이론을 현실에 잘 적용해 구체적인 성과를 내보겠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의욕이라는 관점이다. 학문이 이론 그 자체로 그치거나 고답적인 논리체계에 머무른다면 세상은 누가 바꾸고 개혁할 것이냐는 반문도 나온다. 더구나 정치권에만 몸담아온 생계형 정치꾼이나 일찍부터 시험으로 공직에 입직해 실무역량만 키워온 전업 공무원들을 변하게 하고 개혁을 유도하려면 이론으로 잘 무장한 외부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군살로 느려빠진 미꾸라지들을 몰아세우는 ‘외부의 메기’ 역할론이다.

과거 개발기에 경제정책을 총괄한 남덕우 전 총리(서강대) 같은 경우가 훌륭한 롤 모델이라는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정권 시기에도 경제, 교육, 남북한 관련 등에서 무수한 학자가 정부에 들어가 각종 요직을 맡았고, 상당수는 성과를 냈다. 김대중 정부 때는 ‘중경회’라는 경제학자 중심의 자문그룹이 정부 출범 초반부터 중책을 맡았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들어 장·차관급 정무직 공무원으로 임용된 249명(2016년 10월 말 기준) 가운데 48명(19%)이 교수나 연구원 출신일 정도로 학자의 참여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정도면 직업 관료 출신(118명)에 이어 가장 많은 직군이다. 어떤 행태를 보이고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문제일 뿐 교수의 정치와 행정 참여 자체를 사시로 볼 필요는 없다.

미국만 봐도 많은 교수, 학자가 행정부로 들어갔다. 조지프 스티글리츠(컬럼비아대) 같은 노벨상 수상자도 빌 클린턴 행정부 때 대통령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냈으며, 그는 이 경력을 바탕으로 국제기구인 IBRD 부총재로 국제사회를 위해 일했다. 투명하기만 하다면 한국에서도 훌륭한 연구자들이 공공의 영역으로 대거 진출해 성과를 내야 한다.

○ 반대

악습 중의 악습이 교수나 연구원이 강의실과 연구실은 팽개친 채 정치권력 주변을 맴도는 것이라는 관점이다. 높은 수준의 신분 보장을 악용해 선거철이면 정당 공천이라도 받겠다며 저질 정치에 망설임 없이 동참하는 교수가 줄을 잇는 것도 폴리페서의 적폐라는 비판도 있다. 이런 부류일수록 강의나 연구는 뒷전이고, 정치권 동향에 관심을 가지며 정치권력에 줄대기를 일삼는다는 것이다. 신분 보장은 연구의 독립성과 안정적인 아카데믹 활동을 위한 것인데도 폴리페서들은 저질 선거에서 낙선한 뒤에도 곧바로 강단으로 복귀하고는 한다. 이런 현실이니 아예 정치 참여 금지 규정을 만들자는 제안도 나온다. 선거에 나서거나 정부에 들어갈 경우 교수나 연구원직에서 의무적으로 사표를 내게 해야 한다는 주장도 종종 나왔다.

이번에 최순실 게이트에서도 국가적으로 워낙 충격이 큰 사안이다 보니 해당 대학이 사표를 받고 심지어 해직까지 시킨 것일 뿐 그렇지 않았다면 슬그머니 또 대학의 자기 자리도 되돌아갔을 것이라는 진단도 있다. 교원 징계에 관한 사립학교법 61조는 ‘직무의 내외를 불문하고 교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할 때’ 징계할 수 있게 돼 있다. 하지만 통상 품위 손상에 대한 기준이 명확지 않은 데다, 최종적으로 법원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 결국 폴리페서의 유혹을 받는 교수·연구원 개개인의 윤리적 판단이 중요한데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니 아예 강제조항으로 금지하는 게 맞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요컨대 정치를 하려면 대학이나 연구원 등 소속 기관에 사표를 내고 하라는 것이다. 원천적으로 폴리페서의 역량에 대한 의구심도 적지 않다. 낙하산으로 임명된 홍기택 전 산업은행장 경우가 그렇다. 최대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수장으로 해운과 조선 구조조정에서 그가 한 게 과연 무엇이냐는 비판이다. 더구나 그는 신중하지 못한 ‘정부 압력 폭로전’에 나서면서 갖 출범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의 한국 몫 부총재직만 날려버렸다.

○ 생각하기

"대선 캠프에 수백명씩…노벨상 못받는 이유와 무관치 않아"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야권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돼온 문재인 캠프를 뒷받침하는 싱크탱크 그룹이 근래 발족했다. 무려 500명의 자칭 전문가들이 발기인 격으로 동참했는데, 교수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한다. 이 그룹은 1000명으로 확대된다는 얘기도 들렸다. 전형적인 폴리페서가 이 그룹 내 각 영역별로 길게 늘어섰을 것이다. 선거 캠페인이 본격화되면 어느 후보 진영도 예외가 없다. 장관으로 기용된 뒤에도 각 부처의 고유한 업무와 현안은 뒷전인 채 대통령 보고나 정치활동에만 관심을 갖는 폴리페서도 적지 않다는 일반 공무원의 지적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 최순실 게이트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 영혼 없는 폴리페서들이 준동한 것과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노벨상이 나오지 않는 것 또한 이런 풍토과 관계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허원순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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