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틀릴 수 있다' 인정할 때 전략적 의사결정 오류 줄인다

입력 2016-12-09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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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를 위한 경영학 <35> 의사결정에서의 인지적 편향성

인간의 합리성은 '제한적'
경영자도 예외일 수 없어

개인적 경험에 의존하거나
손실 회피적 경향 지나쳐

비합리성 100% 제거 불가능
경청하고 소통하는 게 최선

김동재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왜 훌륭한 경영자들이 간혹 누가 보더라도 이해가 가지 않는 의사결정을 내리는가? 특히 기업의 명운을 가늠하는 중요한 사안에 대한 최고경영자의 잘못된 의사결정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의사결정은 기본적으로 선택이다. 문제는 의사결정에 이르는 경영자의 인지적 과정에 본질적인 오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경영자라고 하더라도 인간적인 한계에서 기인하는 일련의 편향성을 완전히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인간을 합리적인 존재라고 믿는데, 사실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허버트 사이먼이 정리했듯이 인간의 합리성은 ‘제한된 합리성’일 뿐이다.

개인의 의사결정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 다양한 연구결과가 축적돼 있는데,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대표적인 인지적 편향성이 존재한다. 첫째, ‘준거점 의존성향’이다. 경영자들이 의사결정을 할 때 흔히 저지르기 쉬운 오류가 바로 특정 준거점을 기반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사고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준거점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나 지식에 입각해서 형성되기 마련이고, 따라서 똑같은 정보와 자료를 가지고도 경영자별로 매우 다른 결론에 도달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주어진 시장 상황을 어떤 경영자는 매우 낙관적으로 보는 반면에 다른 경영자는 비관적으로 보는데, 이는 각기 다른 준거점에 의존해서 상황을 주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둘째, 이른바 ‘손실 회피성향’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익보다는 손실에 커다란 가중치를 부여하는 성향이 있고 이로 인한 인지적 편향성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개입된다는 것이다. 잠재적 위험을 감안해 객관적으로 도출한 예상 이익이 예상 손실보다 높은 경우에도 경영자들은 많은 경우 실패확률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의사결정을 하는 경향이 많다. 마치 일반 투자자들이 원금보장을 투자의 첫 번째 항목으로 꼽듯이, 전문적인 경영자들도 작은 잠재적 손실을 회피하려고 하다가 커다란 이익의 가능성을 놓치게 된다. 기업에서 신규 사업에 진출하는 의사결정이 왜 지지부진하고 새로운 방향으로의 변화가 왜 그렇게 어려운가를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가진 것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셋째, 인간은 ‘시간’과 관련해 매우 불완전한 인지적인 과정을 가지고 있다. 시간이 상대적이라고 하듯이 어떤 경우에는 몇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기도 하지만, 다른 경우에는 단지 몇 분의 시간이 지루하게도 느껴진다. 경영자들도 이런 인간적인 한계를 내재적으로 가진 채 회사의 명운을 좌우할 수도 있는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다. 특히 오래전에 겪은 일보다는 최근에 경험한 일에 대해 더 강한 느낌을 가진다거나 매우 자극적인 경험을 중심으로 시간적인 기억이 왜곡된다든가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래에 대한 예측에 있어서도 우리는 시간 축에 대한 객관적인 인지가 어렵다. 분명히 시간은 객관적으로 흘러가는데, 경영자가 느끼는 시간은 주관적이다.

넷째, ‘확률에 대한 환상’ 또한 인간의 인지적인 오류를 초래한다. 많은 경우 의사결정은 확률을 기반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현상이 숫자로 표현될 때 마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사실인 것처럼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험실과 같은 통제된 상황에서 주사위를 던지는 실험을 하는 경우와는 달리 실제 경영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확률은 사실상 주관적인 요소가 개입되기 마련이다. 물론 많은 자료를 기반으로 나름대로 객관적인 확률을 도출해 내는 노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인간의 인지적 편향성이 확률을 추론하는 과정에 개입될 여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미국의 대선 결과 등과 같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던 일들을 미리 확률적으로 계산해낸다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끝으로 심리학에서 많이 소개된 ‘프레임’과 관련된 인지적 편향성이다. 복잡한 세상사를 단순하게 정리해 이해하게끔 만들어 주는 인지적인 구조 내지 틀을 프레임이라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 준거점과 마찬가지로 프레임 역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지식에 의해 선택적으로 형성된다.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본다는 것이 바로 자신의 선택적인 프레임을 통해 세상을 본다는 의미다. 경영자들 역시 인간 본연의 편향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여전히 과거에 자신이 성공했던 사업 경험으로 형성된 프레임에서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새롭게 펼쳐지는 사업 기회를 놓치거나 게임의 룰이 변화하는 시장에서 더 이상 성공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한번 형성된 프레임은 변하기 어려운데, 그 이유는 프레임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어렵고, 특정 개인이 동시에 여러 개의 프레임을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고 대개 하나의 프레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경영자, 특히 최고경영자가 자신을 합리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객관적인 분석에 의한 자료를 가지고 생각해낼 수 있는 모든 가능한 대안을 빠짐없이 생각한 다음 가장 성과가 높을 것으로 여겨지는 방향으로 전략적 의사결정을 하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자의 모습이 바로 본인이라고 믿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경영자도 인간이다. 위에서 설명한 인간의 본연적인 인지적 편향성에서 자유로운 경영자는 아무도 없다. “실수하는 것이 인간이다”는 옛말이 있듯이, 경영자는 의사결정에서 적지 않은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의사결정의 성공확률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인가? 다름 아니고 경영자가 자신의 비합리성을 받아들이는 것이 출발점이다. 물론 위에서 열거한 인간의 인지적 편향성을 극복해 보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사람의 속성에서 우러나오는 편향성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편향성을 부정하거나 극복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인간의 특성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전제로 해결안을 모색해야 한다. 결국 경영자가 겸손한 마음으로 전략적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 회사의 흥망을 좌우하는 것이 전략적 의사결정이다. 자신의 독단적인 생각에만 의존하지 말고 회사 경영진의 의견을 폭넓게 수용하는 팀에 의한 의사결정으로 접근해야 한다. 회사 내에서 다양한 의견이 개진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또 외부의 의견도 적절히 경청해야 한다. 겸손과 소통, 두 단어가 경영자의 마음에 각인돼야 한다.

■'완벽한 의사결정'보다 '최선의 결정'에 집중을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 회사인 클라이너 퍼킨스의 파트너인 랜디 코미사는 맥킨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사의 투자 의사결정 과정을 설명했다. 먼저 다채로운 배경과 경험이 있는 파트너들로 투자심의회를 구성한다. 중요한 점은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해당 투자 건에 대한 세분화된 전문영역에 관련된 사람뿐 아니라 다른 분야 파트너들도 심의회에 포함한다는 것이다.

회의에서 먼저 결론을 얘기하는 것은 금기다. 화이트보드 중간에 선을 그어 왼편에는 해당 투자에 대한 장점을, 오른편에는 단점을 적는 소위 ‘의견대차대조표(opinion balance sheet)’를 만든다. 이 표를 활용해 참석자들은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한다. 단,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고 일단 의견만을 제시한다. 같은 사람이 동시에 장점과 단점을 복수로 제시할 수 있다. 더 이상 의견이 나오지 않으면 그때 비로소 토론에 들어간다.

토론은 결론보다 장점과 단점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다. 또 완벽한 의사결정보다는 제한된 시간 내에 최선의 결정을 목표로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각 개인의 선입관과 편견을 인정하고 서로 다른 생각을 종합해 집단적인 통찰력을 기반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김동재 <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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