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당국은 지난달 23일 조류인플루엔자(AI) 위기경보를 ‘주의’에서 ‘경계’로 한 단계 올렸다. 상황이 더 나빠지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위기경보 수준을 ‘심각’으로 더 올려야 하는 것 아니냐.”
하지만 방역당국 관계자들은 줄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상도와 제주도는 아직 안 뚫렸지 않나. 강원 철원도 사실상 경기도이고….” ‘심각’ 단계에 준하는 방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상향 조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매번 따라붙었다.
상황은 방역당국의 기대와는 다르게 움직였다. 15일 기준으로 1140만1000마리의 닭과 오리가 이미 도살 처분됐고, 403만8000마리는 도살 처분될 예정이다. 사상 최악의 피해를 낳은 2014~2015년의 도살 처분 마릿수(1396만마리)를 훌쩍 넘어섰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도살 처분 마릿수는 많지만 대부분 산란계(알을 낳는 닭)여서 전국의 피해 규모는 크지 않다”고 했다. 한 농가에서 많게는 100만마리까지 키우는 산란계가 살처분 대상의 78.5%를 차지하고 있는 탓에 마릿수가 많아 보인다는 설명이다. 위기경보 수준을 ‘심각’으로 올리려면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기조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방역당국이 미적거리는 이유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방역당국의 이런 안일한 태도가 AI 확산을 막지 못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지적한다. 통계청의 ‘2016년 3분기 가축 동향조사’를 보면 전국 닭의 80%가량은 영남권과 제주도 이외 지역에서 키워지고 있다. 오리는 이 비율이 97%에 달한다. 영남과 제주가 안전하다고 ‘심각’ 수준이 아니라는 설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방역당국은 AI가 발생한 2003년 이후 처음 ‘심각’으로 상향 조정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결국 정부는 여론이 심각해지자 이날 AI 위기 경보를 ‘심각’으로 올렸다. 일본과는 대조적이다. 지난달 21일 일본 정부는 돗토리현 철새 배설물에서 AI 바이러스가 발견되자마자 위기경보 단계를 최고 수준인 ‘3등급’으로 올렸다.
김재후 경제부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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