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나쁜거냐, 남녀 사이냐…인신공격성 발언으로 비난 자초
증인엔 반박기회 안주고 면박만…할말 다하는 미국과 너무 달라
"불출석한 증인 잡아와라"…'보여주기식' 동행명령장 발부
[ 유승호 기자 ]
“정유라 씨가 이화여대에 입학할 때는 이름조차도 몰랐다는 거죠?”(이완영 새누리당 의원)
“네. 전혀 몰랐습니다.”(최경희 전 이화여대 총장)
“입학처장에게 정유라 씨가 수시모집에 지원했다는 얘기를 한 것이 맞습니까?”(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런 사실이 없는 것으로 기억합니다.”(김경숙 이화여대 교수)
15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에서 국회의원들과 증인들이 주고받은 주요 문답이다. 지난주부터 열린 네 차례 청문회에서 매번 비슷하게 되풀이된 장면이다. 최순실 국정농단의 몸통인 핵심 증인은 빠진 채 그나마 출석한 증인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국회의원은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을 던지며 언성을 높이는 일이 반복됐다.
본질 못 밝히고 가십성 질의
지난 14일 3차 청문회는 대통령의 시시콜콜한 사생활을 들추는 데 집중했다. 국회의원들은 전 대통령 주치의와 자문의, 청와대 경호실 의무실장 등을 상대로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일 미용시술을 받았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에게 태반주사를 놓았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비선 진료’가 사실로 드러났지만 정작 세월호 참사 당일 진료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피부 주름을 줄이기 위한 시술과 머리 손질 등 국정농단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박 대통령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집중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7일 2차 청문회에선 최씨와 측근인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의 관계에 대해 “좋아하냐. 미워하냐. 남녀 사이냐” 등 가십성 질문이 쏟아졌다.
지난 6일 1차 청문회에선 증인으로 출석한 대기업 총수 9명에게 “머리가 나쁜 거냐” “아는 게 뭐냐” “국정농단 공범이다” 등 인신공격성 발언이 쏟아졌다. 국정농단 사건과 무관하고 정치인이 관여할 일도 아닌 기업 경영권에 관한 질문까지 나왔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기억력이 훨씬 좋고 아는 게 많은 전문 경영인에게 경영권을 넘기는 게 어떻겠냐”고 힐난했다.
기업인도 의원들의 질문에 당당하게 답변하고 반박할 것은 반박하는 미국 청문회와는 너무나 다르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2013년 5월 미국 상원 역외탈세 청문회에서 애플이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의원들의 질타에 “세율을 낮춰야 기업이 해외에 있는 돈을 미국으로 가져올 것”이라고 반박했다. 우리는 청문회에 나온 기업인들에게 제대로 답변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질의시간·증인 소환 한계
국정조사특별위원회는 15일 청문회에 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실장이었던 정윤회 씨와 박관천 경정(전 청와대 행정관) 등 핵심 증인이 불출석하자 이들에 대해 동행명령장을 발부했다. 김성태 특위 위원장이 TV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국회 경위들을 모아놓고 동행명령장을 일일이 전달했다.
그러나 동행명령도 당사자가 거부하면 강제성이 없는 데다 동행명령 거부 시 5년 이하 징역에 처하게 돼 있지만 실형을 선고한 사례도 없다. “추운 날씨에 소재지도 불분명한 증인들을 찾아오라고 경위들을 보내는 것은 실효성이 전혀 없는 보여주기용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핵심 증인들을 출석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회의원 1인당 7분으로 제한된 질의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시간 제약이 있다 보니 차근차근 질문을 던지며 진실에 근접한 답변을 유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의원들은 증인이 답변하려고 하면 “시간 없으니 묻는 말에만 짧게 답하라”고 말을 끊기 일쑤였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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